틈이 추천하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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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숙론>을 읽고 매료된 결과, 자꾸 다른 모임이나 공간에 가서 ‘숙론’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라>에서 소개한 리처드 로티의 ‘마지막 어휘’(개인과 집단이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어)를 보면서, 최재천 교수의 ‘숙론’이 그의 마지막 어휘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인으로서 특정한 지식체계에 관한 글이 아닌 지식이란 무엇이며, 그 지식을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그의 관점이 인상깊었다. <최재천의 공부>(2022)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먼저 출간된 건 아닐까 싶은데, 결국 지식을 어떻게 다뤄나가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 같았다. 2024년 6월에 있던,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 배치된 책을 한 권 집어서 왔는데, 이토록 흥미로운 주제라니!
특정 행사에서 진행하는 ‘토론’ 파트에 참여하면,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자로 불리는 사람이 대화를 독식하거나 자기 생각을 내뱉으며 정답으로 여긴다. 주위의 인물들에게 질문을 돌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늘어뜨리는 사람을 제지하지 못 한다. 만약 스스로 답이 있다면 관심있는 사람을 모아 강연을 하면 될 텐데, 제대로 된 ‘토론’을 해본 적이 없기에 토론과 강의를 헷갈려한다. 혹은 100분 토론과 같이 전투적인 토론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두려워한다. 의견을 교류하고 질문을 나누며 자그마한 해답을 찾아 나가는 길은 현시점에서 소원해 보인다. 그곳에 ‘숙론’의 자리가 필요하다. “여럿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17p)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19p)이다.
[도서 리뷰] 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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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에 관한 책을 쓴 장대익 작가가 ‘공감’에 대한 책을 쓰다니! 궁금함에 얼른 독서 리스트로 저장 후 모임에서 책을 선정할 기회가 주어져 야심차게 제안했다. 진화학자로서 ‘공감’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감에 또 다른 곳에서 필독서 혹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수상을 했다는 자료들을 찾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때론 몰입하고 때로는 가볍게 밑줄을 치며 읽었다. 사회과학 도서의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뒤바꿀 수 있는지, 이 현상을 뒷받침하고 지탱하는 연구결과와 근거는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소한 구분을 통해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 짓는다. 내집단에서 안정감을 경험하고 외집단은 경계하며 조심한다. 옥시토신 호르몬에 대한 재밌는 사실은, 이 호르몬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방향이 내집단에만 한정되어 있다. 더 나아가 내집단만 선호하는 사고와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편협한 공감 호르몬’이다. 자아존중감, 정체성 획득·유지를 위해 집단 동일시는 유지된다. 공감의 발현은 내집단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내집단 외의 구성원들에게는 차별의 근거가 된다. 공감의 양면성의 시작이다.
[도서 리뷰] 공감의 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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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그는 흑인해방운동에 이름을 남겼다. 미국의 흑인 차별에 반기를 들고, 비폭력·평화 시위로 흑인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미국은 노예였던 흑인을 주축으로 농경사회를 지탱했고, 남북전쟁 이후 흑인은 해방되어 자기만의 몫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헌법은 개정되었지만, 성문화된 법령은 일상에서 실현되지 못했고, 제도는 차별을 용인했으며, 백인은 제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차별은 지속됐다.
주류층이자 기득권인 백인들은 흑인의 외침을 묵인했고, 폭력으로 응수했다. 사회에 변화를 제기하는 집단은 뭇매를 맞기 마련이지만, 매번 죽어가는 흑인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단호한 시선에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당연함에 문제를 제기하다 보니 결국 투표할 수 있는 권리에 다다른다. 법은 흑인을 투표할 수 있는 피선거권자로 인식했지만, 투표소에 근무하는 백인은 끊임없이 ‘반려’하면서, 그들을 비시민으로 인식했다.
[영화 리뷰] 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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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일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한다. 첫째, 워라벨을 중요히 여기면서, 직장 외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다. 운동을 지속하며 몸을 쓰는 훈련을 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취미활동, 관계 등을 이어나가며 즐거움을 경험한다. 둘째, 일 자체에 몰입하여, 일을 배우고 투자한다. 노동을 강요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있고, 프리랜서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노동자인지 개인 사업인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고용보험을 가입한 근로자가 아닌 자기 사업,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정적인 근로자의 희망과 스타트업의 중간관리자의 바람이 다르듯이 사람들은 일을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다뤄가고 있다. 첫째와 둘째의 태도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실신에 다다르지 않을까. 두 가지 태도를 때에 따라 전환하고 보유한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일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믿는다. 내가 매일 하는 것, 반복하는 것이 나를 형성하고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돈을 벌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 외에도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이 건강한 일이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일 공동체 외에도 다른 취미, 학습, 관계 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배우고, 연결되는 곳은 회사 외에도 존재한다. 오히려 낯선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내가 나를 탈피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동시에 내가 진행하는 독서모임이 그러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과 인생>은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도서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로 유명한데, <일과 인생>에서 등장한 개념이 낯설지 않다.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라는 세 가지 ‘인생 과제’(23p)를 정직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그가 제시한 과제들을 통합적으로 다뤄가고 있는가.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고민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풀지 못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공헌감[“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내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할 때뿐이다.”(30p)]도 나의 중심에 놓아 본다. 나는 나의 일을 통해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 혹은 나의 명예와 권력에만 집중하고 있는가?
나는 상사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하다. 누구든 그 사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문장들이 와닿았다. “상사는 풀 죽은 부하 직원을 보고 우월감을 느낀다. 또 자신을 거스르는 부하 직원과 치열하게 싸워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부하 직원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136p) “술자리뿐 아니라 부하 직원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상사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내일까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말할 때, 부하 직원은 왜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딱 부러지게 물어보고, 상사는 그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해야 한다. 명령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은 요즘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142p) “부하 직원의 실수는 곧 상사의 책임이다. 이럴 때는 부하 직원을 시키는 것이 상사의 일이다. 또 상사가 자기 보신에 급급해 항의하는 상대 측에 붙어 버리면 부하 직원은 설 자리를 잃고 일을 계속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165p)
[도서 리뷰] 일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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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과잉뉴스의 시대다. 뉴스는 끝없이 정보를 생성하고, 유튜브라는 뉴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뉴스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공분하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 가지 질문. 뉴스란 무엇인가. 언론, 저널리즘의 역할이 무엇인가. 생소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지만, 가짜뉴스, 생성형 AI가 들끓는 사회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틀린 정보를 분별하고, 맥락적으로 반복되는 정보를 판별하는 읽기 연습이 요구된다.
물론 <장면들>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언급하는 도서가 전혀 아니지만, 미디어가 무엇인지,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한 개인의 고찰을 통해 담아낸다. 제목과 같이 손석희 작가(앵커, 사장 등)가 기록한 여섯 개의 장면들은 손석희라는 한 개인이 관찰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JTBC라는 공동체가 깊숙이 관여했던 순간이다. 앵커와 JTBC 사장으로서 실존적 고뇌와 JTBC가 가진 철학, 가치, 역사를 살펴보는 기회가 된다. 그의 묵묵한 걸음에 감탄이 일고, 그가 빠진 JTBC에 아쉽다. 물론 JTBC는 자신만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겠지만.
여섯 개의 장면들 모두 인상적이었으나, 특별히 세월호 참사는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다른 언론사들이 다른 특종과 단독으로 향할 때 세월호 참사를 끝까지 보도했던 JTBC. 어젠다 키핑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미디어 자체가 의제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꾸준히 지켜냄으로서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10p)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사건에 대한 감정이 걷어지고, 공분도 가라앉지만, “논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한 계속하자”(71p)는 흔들리지만, 단단한 부여잡은 말이 인상적이다. JTBC는 대한민국 사회의 큰 줄기를 놓지 않았다. 그 한 사람과 조직이 품고 있었던 철학이 참으로 고마웠다.
JTBC가 만든 코너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철학론. 단독을 포기하면서 상업주의를 내려놓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가치. 음악으로도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예술론. 한 사람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뒷받침하는 리더십 등 나는 <장면들>에서 단단한 기지와 유연한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섯 개의 장면과 다섯 개의 저널리즘 철학으로 이뤄진 구성도 손석희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는 인물인지 발견할 수 있다.
[도서 리뷰]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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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한 시대를 강타해 사회적 변화를 추동했다. 미투운동은 권력자들의 위선과 폭력을 폭로했고, 구조적 차별의 곤고함을, 언어적 차별의 모순을, 일상적 차별의 숨 막힘을 밝혔다. 차별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 도서는 쏟아졌고, 학문적으로 정립된 단단한 도서도 출간했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강자, 여성은 약자라는 대립적 존재로 위치시켰고, 여성의 소수자성을 정치적으로 발화하며 정치권에서도 여성 의제를 다루는 시도를 이어나갔다.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에 괴로워하는 남자’들을 위해 쓰였다. 일본의 스기타 슌스케 작가는 남성의 ‘약함’의 존재를 밝히며, 남성이 ‘강자’라는 프레임이 부당하다고 밝힌다. 그는 일본 내 박탈당한 남성, 즉 인셀(involuntary celebate)의 정치적 정체성화를 부르짖는다. “정치적 올바름의 특징을 띠는 정체성 정치와 재분배 대상에 결코 포함될 수 없는 자들”(46p)로 인식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셀’로 정의되는 약한 남성이 존재를 밝힌다. “소수자 속성이 없는 ‘남성’들은 정치성을 띨 수 없다. 연대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인이 충분히 성찰할 여유도 없다”(57p)며 변두리에 위치된 남성의 약함을 조명한다. 정치의 정체성과 관계의 연결성에서 탈락하고, 약한 남성 스스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연대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로부터 시작하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안톤 체호프 작가의 <버냐 아저씨>를 소개한다. 사회에 분노하는 남성, “제대로 상처받았어여 했어요”라고 고백하는 남성을 향한 위로 그리고 세상에서 소외되는 남성의 체념을 찬찬히 살핀다. “나의 상처와 약함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연약함이나 상처 입을 줄 아는 마음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 약함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156p)며 제대로 상처받을 수 있는 남성이 되기를 요청한다. 감정을 여성성(약함)으로 여기는 남성에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연대의 필요성을 밝힌다. 강한 자들은 도움이 필요 없다. “자립이란 의존할 대상을 늘리는 것”이라는 구마가야 신치이로 의사의 말처럼, 진정한 강함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의 약함을 강요하는 사회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적’을 오인해 진흙탕 싸움처럼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이 세상의 시스템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인셀 남성들은 인생의 굴욕에서 복받쳐 오르는 ‘적’에 대한 증오를, 자신과 적을 분열시키고 대립을 강요하는 ‘세계’를 향한 분노로 바꿔야 한다. 용기 내어 싸우기로 결단해야 한다. 증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이 사회에 분노하라.”(146p) 여성을 적으로 오인하는 인셀에게 차별을 강요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페미니즘과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소리친다. 여성을 향한 분노는 갈등을 일으키지만, 사회를 향한 분노는 변화를 향한 원동력이 된다.
[도서 리뷰]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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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게 하는 실뱅 쇼메 감독의 2013년 영화다. 부모를 잃은 상처로 기억과 말을 잃어버린 ‘폴’은 두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치며 살아간다. 그는 우연치 않게 ‘프루스트’를 만나 그가 제공한 약을 먹으며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자, 언어는 기억의 총체라는 상징을 보여주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잃어버린 시간’이 무엇인지, 이를 되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폴은 프루스트를 만나 기억을 되찾는다. 마담 프루스트가 사는 곳은 건물의 중간층에 위치한 비밀 공간이다. 아마, 보일러실과 같은 장소가 아닐까 싶은데, 생기있는 식물들을 마주한 폴은 과거를 되찾는 여행을 떠난다. 기억을 되찾도록 돕는 마담 프루스트는 마치 스승과 같다. 프루스트는 폴의 과거를 되묻고 상태를 확인하지만, 절대 재촉하진 않는다. 과거는 미래로 나아가는 관문과 같다. 그렇기에 <메멘토>와 <본 아이덴티티>와 같이 기억을 잃은 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러나 폴은 방황할 수 없다. 두 이모의 존재는 그의 방황을 용납하지 않으며, 대신 가야할 길을 정해준다. 방황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모험이자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영화 리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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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PRISMOF>는 영화 비평 계간지이다. 한 영화를 깊이있게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사유하도록 돕는다. 영화는 ‘무빙 이미지’이자 시각예술이기 때문에 체험적 요소가 크다. 그렇기에 이를 언어로 변환하여 이해하고 설득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번 13호는 실뱅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관한 이야기인데,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감독의 창작세계, 문학과의 연결고리, 역동적인 서사 그리고 살아숨쉬는 캐릭터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동시에 <프리즘오브> 잡지는 기획부터 편집까지 세련됨을 잃지 않는다. 챕터마다 다른 종이를 사용함과 동시에 꽉찬 줄글과 환기시키는 질문, 여백 등이 겹겹이 나온다. 부드러운 흐름을 통해 영화가 생성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비평답게 캐릭터, 미장센, 사운드, 감독 등 다양한 분석이 이뤄진다. 실뱅 쇼메 감독의 <일루셔니스트>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공통점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밀어낸다는 점이다. “체념이 되살리는 걸 포기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머무르는 것이라면 회상은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을 받아들인 후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러한 회상의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지나간 것들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97p) 지나간 세월과 시대를 떠올리는 <일루셔니스트>와 지난 상처와 아픔을 떠올리는 <마다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실뱅 쇼메 감독은 지나간 것을 붙잡아 재복원시키는 감독이다.
영화는 식물 등과 같이 시각성 외 사운드도 훌륭하다. <일루셔니스트>는 대사가 없는 무성 영화에 가까우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폴은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소리의 부재는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일루셔니스트>는 영화 자체에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폴에게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되묻게 만든다. “감독은 동시에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음악을 직접 만든 도던적인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감정을 직접 이미지화 하고, 움직임으로 생명을 부여한 후, 음악으로 편집을 한다.”(100p) 소리, 청각을 일상에서 살아내는 작곡가인 실뱅 쇼메 감독이 소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리의 부재를 통해 다른 감각이 제공되고,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음악은 문학적 언어와 동등하다. 음악에 대한 가장 뛰어난 통찰력은 보인 프루스트는 '음악이 영혼을 교류하게 하고, 허무를 극복하게 하고, 형언할 수 없는 확신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음악은 사랑에 빠진 이의 심리적 변동을 반사하는 거울이다.”(152p)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소리에 관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바깥으로 드러내는 자신의 말소리 자체가 자아를 증명하는 방법입니다.”(44p) 갇혀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 자만의 소리를 되찾은 폴. 그의 최초의 말은 아빠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뇌이는 말이자, 자신이 잃어버렸던 아빠를 되찾는 일이었다. 황량한 모래 들판 앞에 목소리는 회복된다. 울창하고 푸릇한 식물 품에서 안락한 기운을 되찾은 폴은 자신의 길을 되찾아나간다. 저항하고, 끊어내고, 밀쳐내며 갈 수 있을 것이다.
[도서 리뷰] 프리즘오브 PRISMOF 13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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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몸짓과 표정 그리고 손동작으로 대화하는 수어는 청각장애인의 제1의 언어다. 최근 지인에게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어통역을 없앴다는 이야기(대통령 선거에는 있었음)를 들었는데, 어떤 농인(청각장애인을 뜻하는 말)은 글자를 읽지 못하고,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 대통령 연설 혹은 정치인이 즐비하게 출연하는 방송의 오른쪽 아래를 보면, 수어 통역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농인들의 정치 접근성을 높이는 장치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는 농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수어 통역사들은 이에 공분을 느꼈다. 추측컨대, 이는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코다>는 청각 장애인 부모에게 태어난 자녀라는 뜻인 ‘코다’인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독립과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다. 음악에서는 ‘악곡 끝에 덧붙이는 부분’으로 불리는데, ‘추가분’과 같은 어감을 갖고 있는 ‘코다’의 삶이 어떠한지 예상된다. 루비는 우연치 않게 베르나르도(에우헤니오 데르베스)에게 음악 지도를 받아 학교 무대 발표를 준비하고, 버클리 음대 진학을 위해 입시 시험을 준비한다. 루비는 듀엣 파트너가 된 마일스(퍼디아 월시-필로)를 연인으로 만나면서, 틴에이저 영화의 문법도 적절히 담긴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동시에 그들은 사랑하는 존재로 자라난다. 루비는 사랑받음에서 사랑하는 존재로 변모하면서 부모와의 정서적 독립을 겪는다. 사랑의 능동성은 사랑의 수동성보다 인간을 한층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농인인 가족과 청인의 세계를 연결하려 했던 루비는 그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다. 가족은 고기잡이 배를 운영하는 수산업 종사자인데,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통역의 역할로 루비가 필요했다. 루비는 가족을 돕기 위해서는 음악 진학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 속에서 영화는 가족의 지지와 루비의 떠남을 그려낸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겪어야 할 몫을 기꺼이 감내하며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영화 리뷰]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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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를 영화화한 안국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소설과는 다르게 임상진(손석구) 기자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놓고 과거의 사건을 플래시백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진행기법을 뒤틀어 빠른 전개와 임상진 기자의 추격극으로 탈바꿈한다. 동시에 삼성을 중심으로 최순실 사건, 촛불혁명 등 최근 일어난 큼직한 일들을 배치해 영화의 현대성을 강조하고, 2004년, 삼성SDS의 포스데이타 시험주행 사건 등을 이야기하며, 기존 골격에 살집을 불렸다.
<댓글부대>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임상진은 실존 인물이었는지도 의심할 것이다. 100%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사실이 더욱 진짜처럼 여겨진다. <댓글부대>는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충실히 재현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든다. 팀 알렙의 방식은 커뮤니티의 현실에 기반하여 여론을 어떻게 조장하고 기업과 사람은 어떻게 이에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임상진 기자의 몰락과 추격극을 현시점으로, 알렙의 커뮤니티 조작을 과거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영화의 호흡 속도는 급박하면서 동시에 정보 전달에 충실하다. 전개 속도 및 결론 등 상업영화의 문법으로 이야기는 흘러가지 않았기에 이에 취향은 갈리는 듯하다. 임상진 기자가 과거의 사건을 추격하는 것처럼, 관객들도 과거의 이야기를 추격하고 깊이있게 들어간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현실을 마주한 임상진 기자처럼, 관객들도 그와 비슷한 마음을 느꼈으리라. 진실은 정보를 탐색해야 하고, 분간해야 하며, 결정해야 한다. 진실은 사실을 모아놓은 꾸러미가 아니라 방향이 구체화된 사실들의 총합이다. 영화는 파편화된 사실을 보여주며, 진실을 찾을 것을 요청한다.
[영화 리뷰] 댓글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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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보편적이라 생각한다. 즉,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것은 정상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결혼은 관습이다. 때가 되면 결혼했고, 결혼 후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가졌다. 비혼, 비출산이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결혼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연애는 필수적이다. 연애를 결혼의 사전단계로 인식하는 문화로 부모는 연애를 종용하기도 하고, 연애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거나 혹은 기이한 눈으로 쳐다보며 이상형을 물어본다. 즉 이성 간 로맨스는 모든 존재에게 필수적이었고, 그 신념으로 우리 사회는 지탱되었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은 무성애자를 다룬다. 타인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에이로맨틱’과 타인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색츄얼’ 캐릭터가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로맨틱 지향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건 지극히 최근이기 때문에 생소한 용어로 비춰진다. 드라마는 낯선 개념을 안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연애, 사랑, 결혼, 이혼, 자립, 우정, 꿈 등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사건과 낯선 사건을 배치하며 이야기의 호흡을 조율한다.
부모에게 강요받는 가족성에 저항하는 사건, 동성 친구에게 느끼는 끌림으로 친구를 잃어버리는 사건, 연인과 미래의 꿈이 연결되었던 과거의 삶, 이혼 후 홀로서기 등 우리들의 삶은 복잡하고 다채롭다. 이는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를 풀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아니라, 나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 내가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드라마는 이를 낯선 ‘로맨틱 지향’을 가진 이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드라마 리뷰]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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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닉슨 대통령 재임 시절,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다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다. 정치적 비리와 스캔들이 발생하면, ‘게이트’라는 수식어가 붙여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닉슨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유감을 표명하며, 대통령에서 자진사퇴했다. 미국의 정치적 스캔들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방송은 그의 뻔뻔함을 포착했다. 닉슨은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는데, 정치인으로서 탈락했으나 미국의 시민으로서 법 위에 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유심히 관찰했던 이가 있으니 바로 영국의 국민 MC, 프로스트다. 번뜩이는 재치와 인터뷰의 경험으로 프로스트는 다짐한다. 닉슨을 인터뷰하여 잃어버린 과거의 영향력을 확장하겠노라고. 그는 중계판권 구매부터 자신을 지원해줄 동료들도 모집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대부분의 미국 방송사는 그의 역량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닉슨 측도 마찬가지였다. 거액의 돈으로 4일간의 인터뷰 제안을 받은 닉슨은 자신만만하게 프로스트를 만날 준비를 마쳤고, 겨우 방송사를 구한 프로스트는 재정적 궁핍 가운데 인터뷰는 시작됐다.
[영화 리뷰] 프로스트 vs 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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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보면, 수남(이정현)과 규정(이혜영)의 로맨스에 가깝다. 수남은 규정을 만나 성실한 나라로 빨려 들어간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집’을 플롯의 중심에 두고 전개한다. 전반부, 집을 사고자 했던 수남의 순수함에 관객들은 짠한 고통을 느낀다. 후반부, 집을 팔고자 하는 수남의 순수함에 관객들은 안타까움과 경악 그 사이에 놓인다. 갈등이 촉발되는 도시 재개발의 대한민국 현실과 터무니없는 수남의 살인을 연결짓는다. 물론 영화는 판타지 장르물에 기대었기에 범죄 장르처럼 그의 살인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가 성실하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현실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규정의 바람대로 9년 만에 집을 산 수남이지만, 청각이 손실되고, 손가락이 절단된 규정은 정상성에서 박탈된다. 꿈꿔왔던 그리고 몸을 뉠 공간은 존재하지만, 그 공간에 존재할 정상적인 몸은 사라졌다. 몸은 욕망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지 않겠는가. 생산성에서 멀어진 규정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고, 자아는 피폐해졌다. 그는 자살을 선택했고, 결국 식물인간이 되었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자는 현재를 살아낼 수 없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에 존엄을 추구하고, 현실을 바라보며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본다. 규정은 미래와 현실 모두 잃어버렸다.
[영화 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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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회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과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인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사랑 그리고 죽음을 둘러싼 법정극이다. 15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대화 자체만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지루함을 줄이는 각본을 내보인다. ‘추락’과 ‘해부’라는 키워드는 이 영화를 아우르는 핵심이다. 남편의 추락은 산드라(산드라 휠러)의 존재가 낱낱이 해부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그의 비밀들이 속절없이 드러나며 그의 명성과 권위는 추락한다.
추락. 남편의 급작스러운 추락사. 위층에서 떨어져 죽음에 다다른 끔찍한 사건 앞에 경찰들은 사건을 탐색한다. 시각장애인 아들의 앞뒤가 다른 말들,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산드라가 남편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동기를 발견하는 등 남편의 죽음은 그들 가족의 위신을 추락시킨다. 유명한 작가였던 그는 한순간에 명성은 바닥을 치고, 뉴스는 그를 다양한 수식어로 지칭하며 산드라는 몰락한다.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 속 그의 마음은 분해되고, 해체된다.
[영화 리뷰] 추락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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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일깨운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없다. 공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운 감정이다. 공포 영화(호러)는 공포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는지에 따라 그 흥망이 결정된다. 유재선 감독의 2023년 첫 장편영화인 <잠>은 일반적인 공포의 도식을 비틀었으나 공포라는 감정은 전달되는 수작이다. 공포 영화를 도식화하는 문법을 따르지 않고 분위기, 대화, 상황만으로 공포감을 자아낸다. 동시에 캐릭터는 시대와 맞닿아 생동하고, <잠>의 캐릭터는 사회에서 탈락한 비정상성에 근거해 공포를 전달한다.
[영화 리뷰]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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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왕따>는 2014년부터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한 웹툰으로, 재난 속 약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본성을 관찰한 생존투쟁기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유쾌한 왕따>를 각색한 영화이자,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박해천 작가의 도서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름을 빌려왔다. <유쾌한 왕따>의 시대상황과 캐릭터성을 가져오고, 박해천 작가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주제의식을 차용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공화국’이 무너진 디스토피아를 그리는데, 세상에 느닷없이 닥친 재앙 앞에 무너지지 않은 콘크리트 결합체인 아파트에서 생존하는 이야기다.
[영화 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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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업체에게 계약금을 받은 릴라 크레인(베라 마일즈)는 거액의 돈을 갖고 도망친다. 그가 평생 일해도 만질 수 없는 돈이기에 그는 안절부절하며 돈을 꽉 움켜쥔 상태로 불안감을 몸에 두른 채 여관에 도착한다. 그는 남자친구에게 향하려 했으나 결국 죽음에 이른다. 마치 거액의 돈이 영화의 중심인 추격극인 것처럼 보였으나, 영화는 돈을 바로 삭제시킨다. 이후 릴라를 찾는 언니, 남자친구인 샘 루이스(존 게빈)가 여관으로 방문하면서 누가 릴라를 죽였는지에 대한 추격전으로 넘어온다.
[영화 리뷰] 싸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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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흥행은 폭발적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멈췄던 극장의 문은 부산스러웠다. 사람들은 서로의 심박수를 인증하며, 얼마나 영화를 보며 분노가 일었는지 공유했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사 쿠데타의 순간과 그 과정을 담는다. 5·18항쟁, 6·10 민주항쟁 등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영화가 개봉했으며, 12·12사태에 관해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을 주인공으로 배치해 심리묘사부터 인물 전개를 이끈 영화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영화 리뷰]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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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기생하는 미약한 인간은 황량하고 드넓은 초원에 자그맣게 존재한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대단한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간들이 어떤 역풍을 맞을 것인지 암시한다. <램스>는 양을 목축하는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구미(시구르더 시거르존슨)와 키디(테오도르 줄리어슨) 40년 동안 말 한 번 섞지 않으며 관계를 끊은 지 오래다. 그들은 양 목장을 따로 운영한다. 아마 부모 때부터 이어져온 업일 터이다. 두 형제가 속한 협회(?)는 양 품질 콘테스트를 시행하는데, 형인 키티의 양이 근소한 차이로 우승을 거머쥔다. 이에 분개한 구미는 자신이 기른 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몰래 축사로 들어가 살펴보는데, 우승한 양에게 전염병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알린다.
즉각 처분하라는 방역수칙에 따라 그들의 양들은 매장 대상이 된다. 근처 마을의 모든 양은 처분될 것이라 이야기를 듣는다. 끝까지 저항하는 키디와 다르게 구미는 순순히 따르나 싶더니 지하에 몰래 최상급의 양을 숨긴다. 구미의 탓으로 자신의 양들이 처분된 것에 분개한 키디는 동생과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키디는 총으로 동생을 위협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거침없다. 양을 잃은 키디의 무력한 감정은 점차 그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구미는 동생 탓을 하며 분개한 채 밖에서 동상에 걸려 죽을 뻔한 키디를 발견하고, 집으로 들인 뒤 몸을 녹여 구해준다. 옷을 모두 벗기고, 따뜻한 물로 그의 몸에 적신다. 죽었다 살아났지만, 그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영화 리뷰] 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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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차지한 <가여운 것들>은 2024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충격적인 영화다. 미국 아카데미 상의 상업성과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작품성까지 모두 인정받은 드문 사례가 아닌가 싶다. 감독의 다른 장편영화와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절망과 탐욕의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를 담은 다른 영화들의 엔딩과 다르게 <가여운 것들>은 한 인간의 성장서사이자 페미니즘 영화로도 읽힌다. 우리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여성은 지나간 시대에서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영화 리뷰] 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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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자주 보진 않는 편인데, 2024년 첫 드라마를 뗐다. 남들이 그토록 재밌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어후 뭐, 그렇게까지..’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예상치 못한 재미에 5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던 기이한 경험을 했다. 의사들의 노고 앞에 따뜻한 마음이 다가왔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 카메라 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이해해야 할 테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도적으로 악인을 제거하여 갈등구조와 관계를 대립시키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의사의 일상과 그들의 꿈을 살펴보게 된다. 물론, 아쉬움이 없진 않다. 밴드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마지막 회차에 터트려주는 엔딩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드라마는 작위성을 과감히 삭제하고 ‘일상’에 중점을 두고 서사를 끌어나간다.
병원의 일상은 너무나 가혹하다. 노동강도는 과도하고, 환자응대부터 수술까지 병원 현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쓰라리다. 실패,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무력함과 반복되는 죽음 앞에 도달하게 되는 평온함. 매일 생사의 문턱을 지켜보는 의사에게 죽음은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환자들 한 명 한 명의 아픔도 존재하지만, 이를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의사의 무감각도 존재한다. 드라마는 물론 의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환자 한 명의 얼굴과 시선을 담아내며 병원 안에 놓인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드라마 리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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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존재인 투명인간. 이 캐릭터가 1897년, 발간된 <투명인간>의 모형임을 이제야 발견했다. 수없이 등장했던 투명인간의 영웅적인 모습의 시작이 색소결핍증을 앓고 있는 취약한 청년이라니.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영웅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보이지 않는 남자, 그리핀은 처음 한 여객에서 머물다가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마을에서 내쫓겨졌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복수하는, 이후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낸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길 갈망하는 듯했고, 그 결과는 ‘언어의 혼돈’이었다.” (75p) …… “완벽한 바벨탑의 소음이 만들어졌다.” (81p) 하버드 조지 웰 스 작가는 창세기의 상징을 가져와 마을 사람들이 쌓은 바벨탑을 보여준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한 데 모여 견고한 성읍을 쌓았고, 두려움의 존재를 삭제시키기로 했다. 자신의 옷과 돈을 챙기기 위해 돌아온 그는 사냥을 당하기 시작해, 벌거숭이로 도망치기에 이른다.
[도서 리뷰]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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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동권 이야기>는 중증 뇌병년 장애인인 이규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이종화, 김형진, 배경내 작가가 공동저자로 쓴 도서다. 글을 쓸 수 없기에 세 명의 저자는 이규식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하나의 삶으로 연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투쟁의 현장에 있는 지금까지. 그의 치열했던 모습은 어떤 과정으로,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특별히 <나의 이동권 이야기>는 재밌다. 이규식 작가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묻어나 ‘피식’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학 개그와 장애 개그 등 뻘하게 터지는 순간이 적지 않다. 말이라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글이라는 언어로 전달할 때 이규식 작가의 풍성함이 드러난다.
“갑자기 배가 부글부글 끓을 때는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으며 '제발 누가 지나가면 좋겠다/'고 기도한 적도 많았다. 이럴 땐 주로커플을 공략했다(장애인이 부탁할 때 여자 친구가 도와주라고 하면 남자가 안 도와줄 수 없다). 속으로 욕했을지 몰라도 어쨌든 도와주었다. 또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가고 남자가 앞에서 기다리거나 남자도 볼일 보러 갈 때 "나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 여자 친구를 두고 도망갈 수도 없으니 도와주었다.” 79p
[도서 리뷰]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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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생들과 워크숍을 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장애인을 이야기하곤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다. 우리 사회의 약자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더 나아가 장애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 주위의 장애인을 ‘관찰’했을 뿐 ‘관계’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 제목의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백정연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이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은 “쉬운 정보로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소한 소통>의 대표로 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자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쉬운 근로계약서, 쉬운 장례식장 예절, <2024 선거를 부탁해>를 제작하며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배우는 정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도서 리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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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한민국의 경제 불황을 예견하는 기사가 많았다. 소비는 위축되고, 주택 가격이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가격상승률에 비해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정부는 긴축 정책으로 빚을 더 만들지 않기로 했으며, 내가 속한 분야인 도서/영화/독립서점 등은 예산이 반 토막 이상 삭감됐다. 문화를 경제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소비와 예산은 과감히 줄이겠다는 원주시 정부의 입장도 동일하다. 기업과 소비자들이 형성하는 트렌드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트렌드 또한 존재하는데, 그렇기에 트렌드는 깊어지며, 다양해지고 뒤바뀌는 현상이 공존한다.
[도서 리뷰] 트렌드 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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