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책 이름 :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
저자 : 스기타 슌스케
•
출판사 : 또다른우주
•
출판연도 : 2023-12-16
•
쪽수 : 236쪽
리뷰
페미니즘은 한 시대를 강타해 사회적 변화를 추동했다. 미투운동은 권력자들의 위선과 폭력을 폭로했고, 구조적 차별의 곤고함을, 언어적 차별의 모순을, 일상적 차별의 숨 막힘을 밝혔다. 차별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 도서는 쏟아졌고, 학문적으로 정립된 단단한 도서도 출간했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강자, 여성은 약자라는 대립적 존재로 위치시켰고, 여성의 소수자성을 정치적으로 발화하며 정치권에서도 여성 의제를 다루는 시도를 이어나갔다.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에 괴로워하는 남자’들을 위해 쓰였다. 일본의 스기타 슌스케 작가는 남성의 ‘약함’의 존재를 밝히며, 남성이 ‘강자’라는 프레임이 부당하다고 밝힌다. 그는 일본 내 박탈당한 남성, 즉 인셀(involuntary celebate)의 정치적 정체성화를 부르짖는다. “정치적 올바름의 특징을 띠는 정체성 정치와 재분배 대상에 결코 포함될 수 없는 자들”(46p)로 인식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셀’로 정의되는 약한 남성이 존재를 밝힌다. “소수자 속성이 없는 ‘남성’들은 정치성을 띨 수 없다. 연대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인이 충분히 성찰할 여유도 없다”(57p)며 변두리에 위치된 남성의 약함을 조명한다. 정치의 정체성과 관계의 연결성에서 탈락하고, 약한 남성 스스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연대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로부터 시작하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안톤 체호프 작가의 <버냐 아저씨>를 소개한다. 사회에 분노하는 남성, “제대로 상처받았어여 했어요”라고 고백하는 남성을 향한 위로 그리고 세상에서 소외되는 남성의 체념을 찬찬히 살핀다. “나의 상처와 약함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연약함이나 상처 입을 줄 아는 마음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 약함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156p)며 제대로 상처받을 수 있는 남성이 되기를 요청한다. 감정을 여성성(약함)으로 여기는 남성에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연대의 필요성을 밝힌다. 강한 자들은 도움이 필요 없다. “자립이란 의존할 대상을 늘리는 것”이라는 구마가야 신치이로 의사의 말처럼, 진정한 강함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의 약함을 강요하는 사회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적’을 오인해 진흙탕 싸움처럼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이 세상의 시스템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인셀 남성들은 인생의 굴욕에서 복받쳐 오르는 ‘적’에 대한 증오를, 자신과 적을 분열시키고 대립을 강요하는 ‘세계’를 향한 분노로 바꿔야 한다. 용기 내어 싸우기로 결단해야 한다. 증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이 사회에 분노하라.”(146p) 여성을 적으로 오인하는 인셀에게 차별을 강요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페미니즘과 여성의 잘못이 아니라 소리친다. 여성을 향한 분노는 갈등을 일으키지만, 사회를 향한 분노는 변화를 향한 원동력이 된다.
약한 남성을 위로하고, 그들의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책의 흐름, 편집, 인용하는 방식 등 형편없이 논리를 전개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밖에 펼치지 못한다. 약한 남성을 주제로 책을 써왔던 저자의 전문성은 트위터에 찔끔찔끔 올렸던 글을 모아왔던 정도 수준으로 비춰진다. “인셀들은 반드시 경제적 빈곤층이 아니며 정치적 소수자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인셀을 논할 때는 그들의 독특한 고독감, 상처 입은 존엄, 박탈감에 주목해야 한다”(116-117p). 약한 남성은 남성주의가 견고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파생한다. 그들은 남성이기 때문에 소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특정 취약성’으로 묶인 이들을 일컫는다. 자본, 외모, 역량 등 강인한 남성이라는 정상성에서 탈락한 남성은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특정 취약성’이 발생하는 이유는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 취약성이 발생한 이유를 되짚고, 고립·은둔, 정신질환, 한부모, 미혼모, 자립준비 등 다양한 정체성을 찬찬히 풀어나가는 시도가 필요하다.
일본 특유의 문화에서 기인한 주제의식이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까 의문이다. 물론 약한 남성은 존재한다. 약한 여성, 청년, 중년, 노년도 존재한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김학준, 오월의 봄)를 살펴보면, 한국의 약한 남성들은 정체성으로 한데 모여 강한 권력을 취득하여 강한 남성을 표방한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자본주의’, ‘약한 남성’을 키워드로 문제를 제기하고 내놓은 해법이 아쉬울 따름이다.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창조된 ‘약한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적으로 고립되고, 감정적으로 취약한 남성은 존재한다. 감정과 관계 중심의, 남성들이 외면한 여성성을 수용하여 진정한 인간성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강한 남성보다 적절한 인간이 되길 바라야 하지 않을까.
인상 깊은 구절
인셀이란 무엇일까? incel은 involuntary celebate의 약자로, 직역하면 원치 않은 금욕주의자, 비자발적 싱글이라는 뜻이다. 최근 인셀이 일으키는 논란과 폭력이 국제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p
소수자들은 각각의 속성에 기반을 두고 개별적 혹은 집단적인 정체성 정치를 한다. 한편, 이 책에서 말하는 약자 남성은 ‘국민·시민 대 차별받는 자·배제당하는 자’라는 정치적 대립 그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존재로 보인다. 약자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거나 정치적 인정을 얻지 못했다기보다, 이원적 논의의 패러다임에서 소외되고 낙오되고 방치된 것이다. 32p
여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유리 천장’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응용해서 남성은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것이 ‘유리 지하실’이다. 지하실로 굴러떨어졌지만, 유리 바닥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36p
저스틴 제스트의 <새로운 소수자: 이민과 불평등의 시대, 백인 노동자계급의 정치학>에 따르면 ‘과거에 존재하던 힘의 환영’과 현재의 ‘상실감’ 사이에서 미국의 백인 노동자계급은 불안과 긴장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종차별 등 ‘과격화’ 현상이 촉발된다고 한다. 백인 노동자들의 과격화와 차별 의식은 그들의 무력감과 ‘벼랑 끝에 내몰린 상태’를 보여준다. (중략) 저스틴 제스트는 이러한 취약성을 강요받은 백인 노동자들을 소수자와는 또 다른 사람들, 즉 ‘주변화’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44p
그리고 블로그에 게재한 <일련의 ‘약자 남성론’ 언급에서 발견한 ‘약자 남성’ 개념의 핵심과 미래에 보내는 전언: 페미니즘과의 충돌>이라는 글에서 ‘페미니즘은 남성을 통틀어 ’강자‘로 비판하지만, 남성이 모두 강자는 아니며 약자로 살아가는 남성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줬으면 한다는 메시지가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48-49p
여기서는 <젊은이를 죽게 내버려 두는 국가: 나를 전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프리터 등의 남성 약자는 여성 약자보다 사회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했다. 여성은 전업주부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이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51p
그러나 능력, 학력을 둘러싼 격차는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 자기책임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결국 개개인의 내면에 감정적 왜곡(굴욕)이 쌓이게 된다. 부정의에 대한 항의는 외부로 향하‘지만, ’굴욕에 항의하는 경우 그 끝은 자기 불신이다.‘ 63p
그렇다면 ‘남자가 괴롭다’는 뉘앙스는 어떨까?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우열을 논하지 않으면서, ‘내 입장’에서는 정규의 ‘남자다움’이라는 규범성 자체가 괴롭고 숨 막힌다는 뉘앙스가 된다. 그리고 남성 특권이 회복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평등’으로 나아가는 ‘고된 인생’을 선택한다는 선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74p
비정규적이고 주변적인 남성들은 어쩌면 남성 특권에 보호받은 패권적인 ‘남자다움’과는 다른 가치관, 즉 성과주의, 능력주의, 우생학, 가부장제 가치관을 대체할 급진적이고 근원적인 가치관을 발견해낼 기회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78p
OCE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집안일 등의 무보수 노동을 1.9배 더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 격차가 5.5배에 달해 선진국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82p
고령 여성의 행복도는 친구 수에 비례하는 데 반해, 남성은 친구 수와 행복도의 상관관계가 낮았다. 이는 남성이 친구의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사귄 친구가 있는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1인 가구 고령 남성은 동성 친구보다는 친밀한 여성의 존재가 행복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가깝게 지내는 여성이 없는 남성 중 행복한 남성의 비율은 32퍼센트, 가깝게 지내는 여성이 있는 남성 중 행복한 비율은 58.3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 여성의 경우 이성 친구의 유무에 따른 행복도 차이는 남성만큼 크지 않다. 94-95p
나의 상처와 약함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연약함이나 상처 입을 줄 아는 마음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 약함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상처받을 수 있는 남성’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나약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다시 정립할 수 있을까? 156p
사회적 격식으로 위장한 ‘남자다운 갑옷’ 안에는 상처 입은 마음이 숨어 있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남성들은 주변의 ‘여자’에게 남자의 상처‘를 치료받기 기대하거나 무의식 중에 강요한다. 일상에서 적절하게 자신을 돌보는 훈련과 연습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자신을 방치하거나, 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해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폭력적인 공격을 하게 된다. 1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