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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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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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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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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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연도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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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 392쪽
리뷰
현대사회는 과잉뉴스의 시대다. 뉴스는 끝없이 정보를 생성하고, 유튜브라는 뉴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뉴스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공분하고,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 가지 질문. 뉴스란 무엇인가. 언론, 저널리즘의 역할이 무엇인가. 생소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지만, 가짜뉴스, 생성형 AI가 들끓는 사회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틀린 정보를 분별하고, 맥락적으로 반복되는 정보를 판별하는 읽기 연습이 요구된다.
물론 <장면들>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언급하는 도서가 전혀 아니지만, 미디어가 무엇인지,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한 개인의 고찰을 통해 담아낸다. 제목과 같이 손석희 작가(앵커, 사장 등)가 기록한 여섯 개의 장면들은 손석희라는 한 개인이 관찰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JTBC라는 공동체가 깊숙이 관여했던 순간이다. 앵커와 JTBC 사장으로서 실존적 고뇌와 JTBC가 가진 철학, 가치, 역사를 살펴보는 기회가 된다. 그의 묵묵한 걸음에 감탄이 일고, 그가 빠진 JTBC에 아쉽다. 물론 JTBC는 자신만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겠지만.
여섯 개의 장면들 모두 인상적이었으나, 특별히 세월호 참사는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다른 언론사들이 다른 특종과 단독으로 향할 때 세월호 참사를 끝까지 보도했던 JTBC. 어젠다 키핑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미디어 자체가 의제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꾸준히 지켜냄으로서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10p)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사건에 대한 감정이 걷어지고, 공분도 가라앉지만, “논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한 계속하자”(71p)는 흔들리지만, 단단한 부여잡은 말이 인상적이다. JTBC는 대한민국 사회의 큰 줄기를 놓지 않았다. 그 한 사람과 조직이 품고 있었던 철학이 참으로 고마웠다.
JTBC가 만든 코너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철학론. 단독을 포기하면서 상업주의를 내려놓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가치. 음악으로도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예술론. 한 사람의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뒷받침하는 리더십 등 나는 <장면들>에서 단단한 기지와 유연한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섯 개의 장면과 다섯 개의 저널리즘 철학으로 이뤄진 구성도 손석희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는 인물인지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자. 미디어 리터러시. 가짜뉴스를 분별하고 언론이 강요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되묻는 것. 그것은 개별적 사건과 정보를 다뤄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흐름과 정부가 보이는 언론의 장악력 그리고 자본주의와 결탁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되고자 하는 언론의 위치 등 거시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복잡한 세계를 인정할 때 미디어 리터러시가 가능하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인상 깊은 구절 top
미디어학에서 전통적으로 미디어는 ‘개’에 비유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감시견과 애완견이다.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은 이른바 제4부의 역할을 맡아 입법, 사법, 행정의 3부를 삼시하고 비판함으로써 시민사회에 복무한다는 것. 애완견 언론은 말 그대로, 주인의 무릎에 앉아 귀여움을 받는 강아지처럼,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등 지배 엘리트층에 충성한다는 것이다. (중력) 결론적으로 경비견으로서 언론의 목적은 특정한 지배집단을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지배 시스템을 지켜내는 것이며, 이 시스템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향해 짖는 것이다. 78-79p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 사이의 담장. 한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부정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는 언제나 유효하다. 다만, 그 담장 위를 무사히 지나갔다 해도 그 걸음걸이가 당당한 것이었는지 아슬아슬한 것이었는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터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289p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의심은 모든 기존의 현상을 향한다.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376-37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