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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일과 인생

정보

책 이름 : 일과 인생
저자 : 기시미 이치로
출판사 : 을유문화사
출판연도 : 2023-10-20
쪽수 : 220쪽

리뷰

이 시대는 일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한다. 첫째, 워라벨을 중요히 여기면서, 직장 외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다. 운동을 지속하며 몸을 쓰는 훈련을 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취미활동, 관계 등을 이어나가며 즐거움을 경험한다. 둘째, 일 자체에 몰입하여, 일을 배우고 투자한다. 노동을 강요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있고, 프리랜서로 닥치는 대로 일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노동자인지 개인 사업인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고용보험을 가입한 근로자가 아닌 자기 사업,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정적인 근로자의 희망과 스타트업의 중간관리자의 바람이 다르듯이 사람들은 일을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다뤄가고 있다. 첫째와 둘째의 태도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실신에 다다르지 않을까. 두 가지 태도를 때에 따라 전환하고 보유한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일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믿는다. 내가 매일 하는 것, 반복하는 것이 나를 형성하고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돈을 벌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 외에도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이 건강한 일이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일 공동체 외에도 다른 취미, 학습, 관계 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배우고, 연결되는 곳은 회사 외에도 존재한다. 오히려 낯선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내가 나를 탈피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동시에 내가 진행하는 독서모임이 그러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과 인생>은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 작가의 도서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로 유명한데, <일과 인생>에서 등장한 개념이 낯설지 않다.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라는 세 가지 ‘인생 과제’(23p)를 정직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그가 제시한 과제들을 통합적으로 다뤄가고 있는가.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고민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풀지 못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공헌감[“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내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할 때뿐이다.”(30p)]도 나의 중심에 놓아 본다. 나는 나의 일을 통해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 혹은 나의 명예와 권력에만 집중하고 있는가?
나는 상사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하다. 누구든 그 사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문장들이 와닿았다. “상사는 풀 죽은 부하 직원을 보고 우월감을 느낀다. 또 자신을 거스르는 부하 직원과 치열하게 싸워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부하 직원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136p) “술자리뿐 아니라 부하 직원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상사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내일까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말할 때, 부하 직원은 왜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딱 부러지게 물어보고, 상사는 그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해야 한다. 명령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은 요즘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142p) “부하 직원의 실수는 곧 상사의 책임이다. 이럴 때는 부하 직원을 시키는 것이 상사의 일이다. 또 상사가 자기 보신에 급급해 항의하는 상대 측에 붙어 버리면 부하 직원은 설 자리를 잃고 일을 계속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165p)
위 문장들이 나에게 꽂힌다. 리더일 때는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사건마다 지시, 공유, 논의의 구분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후배일 때는 어떻게 신뢰를 얻는지, 관계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고뇌에 빠진다. 동료라고 부르는 관계 안에서도 리더가 되기도 하고, 팔로워가 되기도 한다. 미묘한 긴장관계 안에서 우리의 일은 위치되고, 일은 우리의 관계를 다시 끈끈하게 혹은 위태롭게 만든다. 일은 우리의 삶, 관계를 규정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이름이 ‘일과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계속 일을 배우고 싶다. 기술적인 것도 그렇지만, 일로 구성된 관계 그리고 일로 둘러싼 일상을 고민하고 싶다. 이제 알겠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사건은 발생하고, ‘낯설게 바라보기’는 요구된다. 나의 잘못은 없었는가? 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사과 안에 진심이 포함되었는가? 진심에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가? 실수는 발생할 수밖에 없고,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다루는 능력이 여전히 내게 부족하다. 나의 기질과 바탕을 깨닫는 것도 물론 중요할 테고. 나의 단점과 그럼에도 내가 밀고 가야 하는 것이 명료해지는 지금이다.

인상 깊은 구절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본질은 뭔가를 위해 ‘일하는’ 것, ‘뭔가를 기르는’ 것에 있다. 사랑과 노동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힘들다.”라고 했다. (중략) “사랑이란 사랑하는 자의 생명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염려하는 것이다. 이 적극적인 배려가 없는 곳에 사랑은 없다.” 인간이 누군가를 위해 일할 때, 그것은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은 그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 27-28p
유용한 업적은 공동체 감각이 있을 때만 나온다.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공동체 감각’을 아들러는 영어로 social interest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공동체 감각은 ‘타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공동체 감각은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아들러는 이것을 우주까지로 보았다)를 진보시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다. 천재의 업적은 개인적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공동체의 진보에 공헌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중략)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유익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더 큰 공동체에 해악이 된다면 간과해서는 안 된다. 60p
하지만 부하 직원의 실수는 일을 맡긴 상사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부하 직원의 성격 등을 문제 삼는 것은 상사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즉 자신을 안전권에 두려는 것이다. 110p
불합리하게 꾸짖는 이유는 자신이 능력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유능한 상사는 부하직원을 꾸짖지 않는다. 능력 없는 자신의 말을 부하 직원이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대로 말하면 부하 직원이 경멸하기라 여기기 때문에 꾸짖는 것이다. 133p
열등감이 있는 상사는 자신의 무능함을 부하 직원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하 직원을 꾸짖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본래 상사에겐 권위가 필요 없다. 권위에 호소하지 않아도 유능한 상사는 부하 직원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34p
상사의 생각이 어떠하든 부하 직원은 평소대로 행동함으로써 수평 관계를 맺으면 된다. (중략) 동료를 대할 때처럼 행동하면 된다는 뜻이다. 설령 상사가 감정적으로 몰아세워도 이 상사는 그렇게 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여기면 겁낼 필요가 없다. 부하 직원이 이렇게 생각하고 평소대로 대하면 상사는 그 부하 직원 앞에서는 평소대로 행동해도 되는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도 인정받을 수 있구나 하며 깨달아 차츰 부하 직원에게 불합리하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중략) 상사의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제대로 된 상사라면 부하 직원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잘못을 바로 잡겠지만,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상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분노는 상사 본인이 처리해야 할 감정이다. 따라서 반론했을 때 상사가 화를 내도 그 상사의 ‘감정’에 반응해서는 안 된다. 137p
“손님을 태우고 이런 말을 해서 좀 그렇지만, 손님을 태우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하면 그만이라서 이 시간은 ‘일’하는 게 아니에요. 저에게 ‘일’하는 시간은 손님을 내려 주고 다음 손님이 탈 때까지입니다. 그대는 차를 막연히 몰면 안 됩니다. 어디에서 언제 손님을 태울지 정보를 모아야 해요. 이런 식으로 10년 동안 차를 몰았더니, 그 후의 10년이 달라졌습니다. ‘(길가에 사람이 없어서 손님을 많이 받지 못했으니) 오늘은 운이 나빴다’고 말하는 자세로 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168p
시작하기란 쉽다. 하지만 완성할 때까지 매일 지속하기란 어렵다. (중략) 음울한 잿빛의 나날들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가치 있는 일이 발효되고 결정이 만들어지려면, 이런 단조로운 시간을 인내심을 발휘해 참을성 있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 183-1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