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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정보

책 이름 :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저자 : 백정연
출판사 : 유유
출판연도 : 2022-04-24
쪽수 : 178쪽

리뷰

최근 대학생들과 워크숍을 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장애인을 이야기하곤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다. 우리 사회의 약자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더 나아가 장애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 주위의 장애인을 ‘관찰’했을 뿐 ‘관계’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 제목의 필요를 느낀다.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백정연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글을 읽고 청각장애인이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은 “쉬운 정보로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소한 소통>의 대표로 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자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쉬운 근로계약서, 쉬운 장례식장 예절, <2024 선거를 부탁해>를 제작하며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배우는 정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는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장애인은 몰라서 주변에 묻거나 결정을 위임하는 일이 줄어든다. 자연히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갖는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자존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 또한 높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의 범위, 활동 영역이 확장된다.” (22p)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에게 또 하나의 언어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다. 한자로 범벅된 근로계약서, 비장애인도 헷갈리는 장례식장 예절, 후보들의 차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2024년 총선 등 어려운 정보로 넘친 사회는 다른 언어를 요구한다.
“누구도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을 방해하면 안 된다. 옳고 바르며 안전한 선택을 할 권리는 물론이고 위험에 노출될 권리, 위험을 감수할 권리도 발달장애인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58-59p)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발달장애인의 선택을 얼마나 방해해왔는가. 위험하다는 말로 그들의 행동에 제약이 가해졌고, 한정된 시설에 갇혔다. 그들에게도 ‘위험을 감수할 권리’가 주어진다. “잊지 말자. 발달장애인이 자기 속도대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발달장애인에게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81p) 동시에 자기 속도로 일할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 비장애인의 속도대로 맞출 때 그들은 비생산적인 존재가 되기에 그들의 속도가 무엇인지 ‘기다리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한 그는 척수장애인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이후부터 식당을 알아볼 때는 검색을 최대한 활용한다. 식당의 외관과 내부를 먼저 살핀다. 흔히들 확인하는 음식 맛, 리뷰 등은 중요하지 않다. 입구에 턱이나 경사로가 있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살펴보고, 내부에 입식 식탁이 있는지, 식탁의 폭이나 높이는 적절한지 등을 확인한다.” (112p) 남편과의 여행에서 남들보다 살펴볼 게 너무나 많다. 모든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을 갈 수 없다. 혹은 가게가 잘못된 정보를 기재하여 낭패를 볼 때도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행에서 위협받는다. 지하철 탑승 시, 호텔의 화장실 이용 시, 주유소 주유 시, 백화점 엘리베이터 이용 시 등 척수장애인들의 불편함은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불편함은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구조, 건축, 시설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소소한 소통>의 대표의 경험과 척수장애인의 아내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소개한다. 백정연 작가는 발달장애, 척수장애 당사자와 함께 사는 경험을 쌓아가며 이 책에 도달했을 것이다.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99p) 경험하지 못한 것은 사유할 수 없듯이 모든 이들이 장애인이면 좋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닌 호소에 가깝다. 그는 장애인을 보고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외친다. 얇은 두께이지만, 그의 호소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모든 비장애인이 '비장애인 집단'에 속한 구성원이 아니듯 모든 장애인 역시 '장애인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 더 많은 장애인을 그저 '그 사람'으로 만나며 소통하며, 장애가 아닌 다른 기질과 특성으로도 더 깊이 알아 가려 노력한다. 31p
모여 앉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음식을 적당히 나눠 먹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있으면 나는 그냥 넘어가거나 으레 양보하기보다 알려 준다. …… 비장애인에 비해 일상이 단조로운 발달장애인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새 친구가 한 명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니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두 사람 중 한 명은 솔직히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부담스러워서 연락을 피하거나 미안해서 에둘러 말하다가 관계를 끊어 버리는 식은 발달장애인이 바라는 일도, 그를 위하거나 배려하는 태도도 아니다. ……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복잡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사회적 단서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것이다. 처한 상황을 눈치껏 알아채고 그에 맞게 처신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에게는 혹여 실례가 될까 에둘러 말하는 것보다 분명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38,41,44p)
나아가 사람들은 유독 장애인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때 안전을 강조한다. 안전한 선택과 바른 선택을 강조를 넘어 강요하는데, 그런 강요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또한 발달장애인이 실수,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앗아 간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 혹은 재산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한,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 중 '베어베터'라는 곳이 있다. 베어베터는 국내에서 발달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한 회사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강점을 고려해 직무를 설계한다. 발달장애인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직무를 배정하고 필요한 업무 환경과 도구를 지원한다.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발달장애인이 완수하기보다는 일의 과정을 단계별로 작게 쪼개서 각자가 잘하는 일을 담당하도록 한다. …… 베어베터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일을 잘 못한다면 그건 일을 준 사람의 잘못이라 이야기한다. 65-66p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차별 또는 폭력을 감수하며 사는 것과 같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집집마다 장애인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르게 변하리라 생각한다. 99p

인상 깊은 구절

장애인이동권운동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본격화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하지만 장애인이동권이 얼마나 보장되어야 하며, 보장되지 않았을 때 장애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불편을 겪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량한 시민으로서 막연히 옳은 일에 동의하는 것과 장애인의 동료이자 가족, 친구로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불편을 어느 빈도로 얼마나 겪는지 알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일은 같은 결과를 향하더라도 많이 다를 수 있다. 11p
쉬운 정보를 접한 발달장애인은 몰라서 주변에 묻거나 결정을 위임하는 일이 줄어든다. 자연히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갖는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자존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 또한 높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의 범위, 활동 영역이 확장된다. 22p
모든 비장애인이 '비장애인 집단'에 속한 구성원이 아니듯 모든 장애인 역시 '장애인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 더 많은 장애인을 그저 '그 사람'으로 만나며 소통하며, 장애가 아닌 다른 기질과 특성으로도 더 깊이 알아 가려 노력한다. 31p
경수는 체내의 열이 체외로 발산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땀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아 체내의 열이 식지 않으니 더위를 견디기가 남들보다 어렵다. 흔히 생기는 땀띠가 피부염이 되는 일도 다반사다. 남편은 '흉수'가 가슴 위로는 모든 기능이 살아 있고, 앉아서 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없다. 32p
지금은 없어진 장애등급제, 예전에는 장애 등급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했다. 1급이냐 2급이냐 3급이냐로 장애 정도를 파악하고, 가능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수준을 나누는 식이었다. 하지만 발달장애 1급이면서 우리말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발달장애 3급인데도 읽고 쓰기는 전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34-35p
모여 앉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음식을 적당히 나눠 먹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있으면 나는 그냥 넘어가거나 으레 양보하기보다 알려 준다. 38p
비장애인에 비해 일상이 단조로운 발달장애인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새 친구가 한 명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니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두 사람 중 한 명은 솔직히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부담스러워서 연락을 피하거나 미안해서 에둘러 말하다가 관계를 끊어 버리는 식은 발달장애인이 바라는 일도, 그를 위하거나 배려하는 태도도 아니다. 41p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복잡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사회적 단서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어려울 것이다. 처한 상황을 눈치껏 알아채고 그에 맞게 처신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에게는 혹여 실례가 될까 에둘러 말하는 것보다 분명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44p
거주시설이 제공하던 지원과 돌봄, 관계가 지역사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 거기에 나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하는 것이 진짜 탈시설의 의미다. 49p.
나아가 사람들은 유독 장애인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때 안전을 강조한다. 안전한 선택과 바른 선택을 강조를 넘어 강요하는데, 그런 강요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또한 발달장애인이 실수,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앗아 간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 혹은 재산을 크게 위협하지 않는 한, 누구도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을 방해하면 안 된다. 옳고 바르며 안전한 선택을 할 권리는 물론이고 위험에 노출될 권리, 위험을 감수할 권리도 발달장애인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58-59p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 중 '베어베터'라는 곳이 있다. 베어베터는 국내에서 발달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한 회사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강점을 고려해 직무를 설계한다. 발달장애인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직무를 배정하고 필요한 업무 환경과 도구를 지원한다.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발달장애인이 완수하기보다는 일의 과정을 단계별로 작게 쪼개서 각자가 잘하는 일을 담당하도록 한다. …… 베어베터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일을 잘 못한다면 그건 일을 준 사람의 잘못이라 이야기한다. 65-66p
흔히 '도전적 행동'이라고들 하는 발달장애인 특유의 행동 특성이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꼬집고 무는 등의 위협적인 행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행동에는 대개 해를 가하려는 목적이 없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거다. 언어적 요소로만 소통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타인의 관점을 끌거나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혹은 자신의 감각자극을 추구하려고, 행동과 소리와 몸짓 등의 비언어적 요소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 보통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행동의 이유를 찾는 거다. 상황을 회피하는 건지, 원하는 것을 요구하려는 건지, 관심을 받고자하는 건지 등 이유에 따라 지원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71-72p
이렇게 혼자 반복하는 말을 '반향어'라고 한다. ……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이유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처한 상황이 불안해서 친숙한 표현을 되뇌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어떤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반복해서 들은 말이 기억에 남아서 그 말을 내내 웅얼거린다. …… 반향어를 하는 발달장애인 중 대다수가 반향어를 하는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 반향어 속에는 단서가 있다. 발달장애인이 반향어를 하는 이유를 파악하건 계속하는 반향어를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그 발달장애인의 마음 상태를 알 수도 있다. 72-73p
우리나라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으로 장애인이 자기 능력에 맞는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취업한 중증장애인이 담당 업무를 수행할 능력은 갖추었지만 장애로 인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 직업생활을 지원하는 사람(근로지원인)을 보내 주고, 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며 안정적·지속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제19조의2). 76-77p
잊지 말자. 발달장애인이 자기 속도대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발달장애인에게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81p
지하철에는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보통 그 공간은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댈벽'으로 쓰인다. 항상 비워 두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하면 비켜 주는 게 당연한데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보고도 휴대전화에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모른 척한다. 그럴 때 나는 슬쩍 다가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자리를 비켜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만 속으로는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97p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차별 또는 폭력을 감수하며 사는 것과 같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집집마다 장애인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르게 변하리라 생각한다. 99p
이후부터 식당을 알아볼 때는 검색을 최대한 활용한다. 식당의 외관과 내부를 먼저 살핀다. 흔히들 확인하는 음식 맛, 리뷰 등은 중요하지 않다. 입구에 턱이나 경사로가 있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살펴보고, 내부에 입식 식탁이 있는지, 식탁의 폭이나 높이는 적절한지 등을 확인한다. 112p
입구에 계단이 많고, 엘리베이터 등이 없는 펜션은 아무리 좋아도 이용하기 어렵다. 만약 입구 사진이 없다면, 그곳은 과감히 포기한다. 기본적으로 침실에는 침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휠체어를 침대 옆에 세우고 침대로 트랜스퍼가 가능해야 하므로, 침대 옆 공간도 충분히 넓어야 한다. 침대 옆에 필요한 물품을 둘 수 있는 협탁 등이 있어야 하며, 휴대전화 충전기나 콘센트 등이 침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이모든 것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하나라도 확인하지 못한 경우 불편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많다. 화장실은 특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오래된 집이나 건물의 경우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데도 문턱이 높은 경우가 있다.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 가능한 화장실 환경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샤워를 하려면 샤워기 가까운 곳에 샤워 의자가 있거나, 샤워기가 변기 근처에 있어 변기에 앉아 씻을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지인이 예약한 콘도에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싱크대에서 남편의 머리를 감겨 준 적이 있다. 113-114p
그러니 주유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서 휠체어를 꺼내 앉은 다음 차와 주유기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주유호스를 주유구에 꽂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는다고 해도 주유기의 버튼을 조작할 수 없다. 휠체어 사용자 기준으로는 너무 높이 있으니 손에 닿기는커녕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118p
남편은 키오스크 사용이 어렵다.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서 있는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앉아서는 화면을 보기 어렵고, 휠체어 양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팔 힘으로 엉덩이를 겨우 떼 최대한 시선을 높여도 여러 단계를 확인하고 손으로 화면을 눌러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가 불가능하다. …… 시각장애인은 혼자서 가게 내 QR 체크 단말기와 체온기 위치를 찾을 수 없다. 남편과 같은 휠체어 사용자는 체온기 앞에서 휠체어를 몇 번이나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키오스크처럼 스탠드형 체온기도 서 있는 성인의 키에 맞춰 제작되거나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119-121p
보통은 배변하는 데 12~28시간이 걸리는 반면 척수장애인은 평균 9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너무 오랜 시간 변을 배출하지 못하다 보니, 변비나 치질과 같은 합병증도 생긴다. 127p
KTX는 반드시 사전 예매를 해야 하고, 그때 휠체어 리프트를 요청해 두어야 한다. 열차 도착 15분 전에는 도착해서 탑승 준비를 끝내 놓아야 한다. 간혹 리프트 설치가 어려운 위치에 열차가 정차한다거나 리프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탑승하는데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다른 교통편에 비해 비교적 이용하기 편하다. 비행기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는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마지막에 내린다. 평소 사용하는 휠체어에서 기내용 휠체어로 옮겨 탄 후 탑승할 수 있고, 탑승해서는 좌석으로 옮겨 앉아야 하기 때문에 편도 기준 2번의 트랜스퍼를 해야 한다. 자가용은 핸드컨트롤러를 이용해 운전한다. 핸드 컨트롤러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작동시킬 수 있고 방향 지시등과 경적도 울린다. 왼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핸드컨트롤러를 잡으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장애인에게 핸드컨트롤러 설치비를 지원해 준다. 135-136p
무의는 휠체어 환승 지도 말고도 서울 사대문 안 휠체어 소풍 지도, 서울 궁 지도 등을 만들었다. 책임과 의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과 서울 이곳저곳의 거리, 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휠체어를 타고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찾고 그 결과를 지도로 구현한다. 비장애인의 시선이 아닌 장애인의 시선이 중요함을 알기에 콘텐츠 제작 참가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리서치 활동을 다닌다. 그러니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맞춤형 지도라는 결과물도 좋지만 그 과정에 참여하는 비장애인 시민은 결과 이상의 의미를 학습하게 한다. 144p
사랑의 감정을 어휘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고구마를 슬쩍 전하기도,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고백하는 날 선물을 하기도 한다. …… 발달장애인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통해 사랑을 나눌 권리도 있다. 162-163p
사회는 통합교육을 내세워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한 학교, 한 교실에서 지내게 하는데 장애학생들이 만나는 비장애학생 다수는 장애학생과 친구로 지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럼 통합교육의 취지와 의미는 무색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오롯이 장애학생의 몫이 된다. 학창시절, 이렇게 당한 학교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이 많다. 1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