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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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름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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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스릴러, 드라마, 피카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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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안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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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안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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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 이정현, 이해영, 서영화, 동방우, 이준혁, 지대한, 배제기, 이대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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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 : 2015년 8월 13일
리뷰
넓게 보면, 수남(이정현)과 규정(이혜영)의 로맨스에 가깝다. 수남은 규정을 만나 성실한 나라로 빨려 들어간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집’을 플롯의 중심에 두고 전개한다. 전반부, 집을 사고자 했던 수남의 순수함에 관객들은 짠한 고통을 느낀다. 후반부, 집을 팔고자 하는 수남의 순수함에 관객들은 안타까움과 경악 그 사이에 놓인다. 갈등이 촉발되는 도시 재개발의 대한민국 현실과 터무니없는 수남의 살인을 연결짓는다. 물론 영화는 판타지 장르물에 기대었기에 범죄 장르처럼 그의 살인을 추적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가 성실하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현실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규정의 바람대로 9년 만에 집을 산 수남이지만, 청각이 손실되고, 손가락이 절단된 규정은 정상성에서 박탈된다. 꿈꿔왔던 그리고 몸을 뉠 공간은 존재하지만, 그 공간에 존재할 정상적인 몸은 사라졌다. 몸은 욕망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지 않겠는가. 생산성에서 멀어진 규정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고, 자아는 피폐해졌다. 그는 자살을 선택했고, 결국 식물인간이 되었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자는 현재를 살아낼 수 없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에 존엄을 추구하고, 현실을 바라보며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본다. 규정은 미래와 현실 모두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수남은 생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 남편(규정)이 기뻐할까 싶어 집을 샀지만, 그의 치료비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았고, 집은 전세로 내놓고, 고시원에서 살게 된다. 경찰들의 방문과 카메라 구도는 수남의 처지를 드러낸다.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앉을 공간 하나 없는 고시원은 그들이 꿈꾸는 삶이 무엇이었는지 되묻는다. 새로운 집을 샀지만, 살아갈 집을 잃었다. 집은 그들에게 미래가 되었지만, 그들의 현재를 뺏어간 원흉이다. 자신들이 쌓아온 것에서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심심찮은 위로를 준다.
수남은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하나둘씩 만나며, 위협을 받고, 위협을 준다. 자신을 쫓았던 경찰은 결국 수남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집은 생명이 깃든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가는 공간이 된다. 수남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던 공간들에서 생명은 그 힘을 잃는다. ‘성실’했으나 ‘실성’할 수밖에 없었던 수남의 인생은 참으로 비참하다. 수남과 갈등한 이들은 부자가 아닌 그저 더 나은 삶을 욕망했던 소시민에 불과하기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는 계급론을 비판한 <기생충>과 다르다.
장애 가족으로 인간다움을 끝끝내 유지하고자 했던 한 존재는 결국 정상성에서 추락하며 성실한 나라에서 떠난다. 존엄사를 설득했던 의사의 곁에서 떠나 진정한 존엄을 되찾고자 한다. 집은 수남을 붙잡지 못했고, 그들은 결국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성실한 나라의 문법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다. 대한민국의 참혹한 현주소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고, 험난한 세상을 삐뚤어지게 뚫어가는 캐릭터(수남)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