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시내버스 희망편, '준공영제'가 이끌까?
: 또 다른 폐해를 마주하지 않으려면 by. 전우재
어쩌다 보니 자동차 운전면허 없이 사는 중이다. 빠듯한 생계에 굳이 차를 굴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다. 명색이 대중교통 활성화와 탄소중립을 말하는 입장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가용 없는 삶’이 엉겁결에 신념이 돼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 다진 신념을 흔드는 방해꾼이 있으니, 바로 원주 시내버스다. 말해 뭐 할까. 배차 간격은 길고 노선은 비효율적이고 운전은 거칠고, 하여간 ‘시내버스 절망편’의 필수 요소를 고루 갖췄다. 한참 떨어진 목적지인데, 차라리 걸어가는 게 더 빠른 경우가 있을 정도. “원주는 자가용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버스 한 번 타보면 바로 이해 간다. 차를 살 수밖에 없는 도시다.
민영제 폐해로 망가진 원주 버스
원주 버스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지만, 근본적으론 ‘민영제’ 폐해가 크다. 민영제가 뭔가? 버스 운영은 시장 자율에 맡기고, 지자체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원주 버스를 운행하는 태창운수·동신운수·대도여객 3사는 모두 민간업체다. 이윤을 우선하는 게 당연하다. 수익이 덜 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노선은 없애거나 배차를 줄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업체들은 만성적인 경영난을 겪고 있다. 원주시 재정지원 없이는 운영 자체가 어렵다. 투자 감소로 버스 기사 처우가 열악해지니 실력 있는 베테랑 기사들은 떠나고, 차량 정비와 교체도 소홀해져 안전·서비스 질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용자 편의는 뒷전이 되고 만다.
원주시가 작년 버스 업체에 지원한 돈만 118억 원이라고 한다. 심지어 매년 늘고 있다(80억→85억→118억). 세금으로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데 현실은 왜 이 모양일까? 민영제인 이상, 아무리 돈을 지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라 공공성을 높이기는 무리다.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원주 버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민영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원강수 시장의 해법 ‘준공영제’
원강수 원주시장이 ‘준공영제’를 해법으로 내세우는 건 그래서다. 준공영제가 뭔가? 버스 노선 관리·감독은 지자체가 맡고, 버스 운행과 차량·노무 관리는 업체가 담당하는 방식이다. 수익금을 지자체와 업체가 함께 관리하고 실적에 따라 분배하되, 적자가 생기면 지자체가 재정을 보조한다.
이렇게 하면 뭐가 달라질까? 지자체가 노선에 개입할 수 있어 비수익 노선 운영·배차가 늘어난다. 인건비도 직접 지원해 버스 기사 처우도 나아진다. 여하튼 민영제보다는 공공성이 높아질 여지가 있는 셈이다. 준공영제 도입으로 원주 버스가 그래도 좀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유다.
준공영제가 능사일까?
하지만 걱정도 있다. 준공영제가 오히려 공공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올해 6월부터 지금까지 보도 중인 ‘준공영제 삼킨 사모펀드’ 시리즈를 보면, 준공영제도 결코 능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자칫 세금으로 민간의 배를 불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기사를 보면, 버스를 어떻게 운영해도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탓에 민간이 지자체 재정지원금만 빼먹고 먹튀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모펀드가 개입해 이익보다 많은 배당으로 업체 경영난을 가중하고 엑시트 하기도 한다. 차량 정비·관리 등 안전과 서비스에 필요한 예산을 쥐어짜 이익을 극대화하는 건 물론이다. 차고지를 팔아 대출금을 갚고 저수익 노선을 폐지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서울, 인천, 대전 등 대도시에서 이미 준공영제 폐해가 눈에 띄는 마당에, 원주라고 안 그러리란 법이 없다. 원주 버스 업체의 열악한 경영 사정을 생각하면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되기도 더 쉽다. 기껏 막대한 예산을 들여 준공영제 도입하고도 나아지는 게 없다면 그거대로 큰 문제다.
준공영제 폐해를 막는 대안
민영제 폐해를 극복하려다 준공영제 폐해를 마주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과감한 정책적 상상이 필요하다. 뭘 하든 핵심은 공공성 강화와 안전·서비스 질 향상을 이뤄낼 수 있느냐다.
왜 준공영제를 해도 문제가 생기나? 앞서 언급한 <한겨레> 보도를 보면, 근본적으로 노선을 업체가 소유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지자체가 버스 운영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는 셈이다.
“노선은 공공재”란 인식이 필요하다. 지자체가 노선을 직접 소유해 업체를 대상으로 경쟁 입찰을 진행하는 ‘노선 입찰제’가 대안으로 꼽히는 이유다. 실제로 경기도가 광역노선에 한 해 ‘노선입찰제형 준공영제’를 시행 중이란다. 이런 방식을 잘만 활용하면 지자체가 입찰자를 선정하면서 서비스 질, 안전 등을 평가해 준공영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영국 런던이 이렇게 운영한다고 한다.
더 나아간다면, 결국 ‘완전 공영제’를 도입하는 게 어떨까 싶다. 민간에 막대한 세금을 지원해 배를 불리게 할 바엔, 차라리 세금을 직접 투입해 이익을 버스 운영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당연히 처음엔 많은 돈이 들 거다. 업체가 소유한 노선을 사야 하니까.
그렇지만 <한겨레> 기사를 보면, 당장 전체 노선을 매입하지 않고 적자가 심한 노선부터 사들여 점진적으로 공영화하는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 뉴욕이 이렇게 공영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적자 노선이라고 무조건 업체에 재정 지원할 게 아니라, 업체가 운영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있다. 광역노선 입찰제를 시행 중인 경기도도 이렇게 업체에서 노선을 넘겨받았다.
종합하면, 원주도 적자 노선을 운행하는 업체를 무작정 지원할 게 아니라, 오히려 업체가 운영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노선을 넘겨받고 공영노선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으로 ‘노선 입찰제’를 시행해 준공영제 폐해를 극복하거나, 아예 '공영제’로 나아가는 길을 닦을 수 있다. 잊지 말 건, 여느 지자체가 다 하는 방식으로 준공영제를 해선 큰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점이다.
'시내버스 희망편'을 꿈꾸며
하여간 ‘준공영제’를 하든 ‘공영제’를 하든 시내버스를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 도시 변화상에 맞게 노선을 늘리고, 중복·굴곡 노선을 효율화하고, 배차를 확대해 원주 어디든 버스로 편리하게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 처우를 개선해 역량과 경험 있는 기사를 양성하고, 차량 정비·교체가 제때 이뤄지도록 해 안전과 서비스 질도 높여야 한다. 피부로 확 와닿는 변화가 필요하다.
시내버스를 개선하면 안 타던 사람도 탄다. 강원도 정선은 2020년 7월 버스 완전 공영제 도입 후 2년 만에 이용객이 58.8% 늘었다고 한다. 정선보다 인구가 10배 이상 많은 원주는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어쨌든 이왕 시내버스 개선에 나선 김에, 원주시가 더 과감하고 선제적인 정책으로 ‘시내버스 희망편’을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그래야 나도 ‘자가용 없는 삶’을 지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