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리뷰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음, 모임에서 좋은 책이란 뭘까요? 다양하게 부연할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실존적 고뇌 즉 직업적 고민을 서술하는 책이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하죠. 특정한 직업으로 일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일이 되어 가기도 합니다.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언가를 배우고 반복하면서 효능감 혹은 공헌감(무언가를 통해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만족감)을 가집니다. 일은 모임 참여자들의 공통점이자 다룰 수 있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어떤 양형 이유>는 법관으로서 고뇌, 존재를 마주하는 태도, 법조계의 현실 등 법을 둘러싼 통찰에 관한 책이자 한 사람의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양형 이유>의 문장은 아름답습니다. 법관들의 딱딱한 이미지와 다르게 따뜻하고 때론 분노가 응축되어 폭발하는 듯하죠. 한 모임 참여자가 말하듯이 ‘많은 문장에서 그의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박주형 작가는 쌉 F일 것 같다’는 말에 공감됩니다. 서두에 책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대한민국 한 판사가 보내는 러브레터’라 대답한 참여자의 말에도 작가의 따뜻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죠. ‘판결문을 이렇게 쓰는지 몰랐다’는 깨달음도 얻어갈 수 있었고요. 모두 책을 좋게 평가했지만, 마지막 챕터로 가면서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법의 한계와 인간의 실수 앞에 그는 ‘사랑’으로 회복과 전환이 가능하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만,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어렴풋이 공감은 되지만서도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도 나눴습니다. 창작활동,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 어린이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깊습니다. 내가 닿고 싶은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닿을 수 있는지 규정하는 건 때로 어려운 일이죠. 그 참가자는 자신의 의사결정 기준이 무엇인지에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언급하더군요. 그의 활동을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챕터별로 인상깊은 문장을 나눴습니다. 1부, 2부에 아름다운 문장과 사건과 통찰이 점철되어 있기에 따로 질문은 준비하지 않고 각자가 뽑은 문장을 중심으로 모임을 진행했죠. 호흡을 가다듬고, 밑줄 쳤던 문장들을 찾아 나누는 시간은 항상 즐겁습니다. 자신이 그 문장에 왜 좋은지를 말하면서 그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양형의 이유>의 문장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가 맡은 사건과 사건에서 생동하는 존재들은 문학과 영화의 캐릭터와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평소 은유가 습관화되어 있고 예술작품을 즐겨보는 것 같아, 반갑게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판사가 당사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사자가 판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상상력도 중요하다.”(282p) 그가 축적한 상상력에 매력을 느끼며, 그것이 연륜이고 경험이며 주름의 깊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도서는 고통에 관한 책을 나눕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김승섭, 동아시아), <고통을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나무연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길보라, 창비) 등을 제안하며 투표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4월은 총선이 있는 날입니다. 국민들의 고통을 응답하고, 공감하고 나누려 하는 인물이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