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책 이름 : 있지만 없는 아이들
•
저자 : 은유
•
출판사 : 창비
•
출판연도 : 2021-06-18
•
쪽수 : 232쪽
리뷰
인간과 비인간을 결정짓는 조건이 무엇일까. 근현대 이후 발명된 개념인 인권, 생명권 등은 국가 체계가 확립 됨에 따라 국민과 비국민의 구분짓기로 세분화된다. 국가는 어떤 특성을 가진 존재를 책임져야 하는지 구체화면서 자신의 국민을 최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이 아닌 존재들은 배제시켰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비국민인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록된 기록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과 지원으로 은유 작가는 경계에 놓인 자들을 책에 담았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8p).” 성인이 되면, 국적에 기록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중·고등학교 교육에 놓인 ‘아이들’은 성인 이후의 삶이 존재하지 않기에 학교생활도 무기력과 모호한 감정을 지니며 살아간다.
미등록 이주아동 당사자의 목소리는 내 가슴을 몇 번이고 울렸다. 부모의 학대와 기대가 공존하는 가족은 원망의 대상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자신의 유일한 공동체이면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타자 공동체다. 고통의 언어가 내 안으로 다가올 때 그들에게 어떠한 책임이 없음을 발견한다. 잘못이 없지만, 차별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한국에서 그들의 살아갈 미래가 참혹하게 느껴져 가슴이 저리다.
카림을 위한 같은 반 친구들의 투쟁과 변호사, 이주인권활동가 등 곁을 지키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지탱되는 이유가 된다. 최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가 개정되면서 미등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주아동은 그 법률 안에 해당되지 않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 사각지대로 놓이게 됐다. ‘누가 대한민국 국민인가?’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미국으로 유학가서 모든 문화와 삶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부유한 이들과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를 다니고 20살에 추방되는 이주아동 중 누가 한국인에 가깝겠는가.
최근 원주시는 원주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 2024년 예산을 한 푼도 지원하지 않으며, 원주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민인지 비국민이지 끊임없이 구분 짓는 시정부의 모습도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처연함한 분위기와 닮아있다. 책의 현실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다.
인상 깊은 문장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미나시타 기류) 7p
애늙은이로 살다가 철부지가 되기로 작성한 사람의 말은 너무도 웅숭깊고 솔직해서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의 본질을 선명히 드러냈다. 11p (* 웅숭깊다: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
더군다나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친구의 아픔을 알리고 같이 행동하자고 제안하며 시민의식을 이끌어냈다. 알아야 싸운다며 아이들과 같이 난민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을 목격하는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알아서 돕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동안에만 사람을 알고 진실을 배울 수 있다. 18p
명명은 해방의 첫단계다.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무관심·망각을 눈 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28p
영국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어도 아동이 만 10세 이상 만 18세 이하이고, 태어난 후 10년간 영국에서 거주하면 부모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국적 취득 기회를 준다. 32p
사회문제의 우선순위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 이주인권활동가는 선주민 문제보다 이주민 문제가 더 중요해서 나선 게 아니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우연히 타인의 고통을 목격했고, 먼 이웃의 일이라며 눈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같이 거들고 싸우다보니 '없는 아이들'이 되어버린 '있는 아이들'이 보이고 아이들의 신음소리도 들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35p
부모님은 한글을 못 읽어요. 저는 몽골어를 못하고요. 부모님은 몽골어 수어를 다 잊어버리셔서 한국어 수어로 대화를 해요. 저는 정식으로 수어를 배운 적이 없어요. 부모님과는 2퍼센트 정도는 수어, 98퍼센트는 보디랭귀지로 얘기해요. 깊은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엄마 아빠도 수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사실 부모님께 굳이 깊은 얘기를 해야 할 필요도 모르겠고요. 만약에 말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태어나게 했는지. 책임감 같은 건 없는지……체류자격도 없이 날 키운 걸 떠나서 육아 방식 자체가 말도 안 돼요. 솔직히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될 정도예요……나중에 자기가 일 못하게 되면 네가 우리 다 먹여 살려야 된다, 너 공부 꼭 잘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어떤 부모가 자기 키 반도 안 되는 애한테 그런 말을 해요? 46-48p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한 사장님들이 체류자격 없는 걸 이용해서 일단 여권을 뺏어요. 임금을 안 주거나 때리거나 나쁘게 대해놓고 '너희 나라로 가, 신고한다'하고 협박하는 게 진짜 현실이에요. 71-72p
저희 오남매와 엄마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아이고, 쯧쯧쯧" 하면서 불쌍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흑인이고 식구가 많을 뿐인데 왜 힘들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아련하게 쳐다보죠? 당연히 전제를 해버리는 게 저는 싫었어요. 어디를 가든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해요. 73p
초등학생만 돼도 아이들이 사실상 부모의 통역 역할을 해야 하죠. 자녀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부모를 강제퇴거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의 재학증명서를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느 사람도 있고요. 85p.
실제로 남유럽 쪽에서는 아예 소위 '면제'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오늘부터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체류자격을 줍니다' 하는 식의 대대적인 양성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선진국들은 장기간 체류했으면 일정 경우에 심사를 통해서 자격을 줘요. 90p
미국은 '앵커 베이비'라고 아이를 닻으로 사용해서 온 가족을 끌어들인다는 말이 있어요. 소위 불법체류자들이 와서 이모도 오고 삼촌도 오고 할머니도 온다. 이걸 좀 고상한 말로 '체인 마이크레이션'이라고 해요. 인쇄적으로 이주민이 늘어난다는 비판적인 담론이죠. 90-91p
외국인 중 전문직 기술 종사자는 비자 형태가 달라요.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가족까지 동반 비자를 주죠. 반면 단순노무직 이주자는 가족 동반을 금지해요. …… 이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정주를 막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어요. 한국에서 일하다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가족 동반을 금지시킨 거예요. 91p
미국에서도 결국은 이주아동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하면서 DACA도 도입이 되고 사회적 의제가 됐거든요. 한국도 결국은 그렇게 나아가야 된다. 즉 당사자들이 한 세대를 이루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이 친구들의 또래, 같이 공부하고 어울렸던 같은 세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정말로 제도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겠다. 94p
면접관들의 태도가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중심으로 물어봐야 할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이런 게 아니에요. '너 교회 다니냐? 찬송가 불러봐' '너 이란에서 태형 맞았냐? 증거 있냐?' '기도문 외워봐' '열두제자 이름 차례로 대봐' 이런 식이에요. 황당한 거예요. 난민 면접을 보러 간 거지 사제 시험 보러 간 게 아니잖아요. 그걸 토대로 불인정이 나온 거죠. …… 같은 내용을 질문을 약간 바꿔서 다시 하는 거예요. 두 시간 뒤에 같은 내용을 또 묻고요.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죠. 120p
이번 코로나19 때 전국 중학생에게 비대면학습지원금이 지급되었는데, 해외 국적 학생들은 모두 배제되었어요. 체류권을 가진 학생들마저도요. 이렇게 신분번호가 있는 아이들도 공교육에서 배척되는 경우가 있죠. 기본적으로 재난 상황에서 외국인을 우리의 구성원이자 재난을 함께 극복해나가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거죠. 138p
미성년자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데, 성년이 되고부터는 자기가 출생신고를 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148p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맞아서 도망을 나왔어요. 이런 경우 쉼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불가능해요. 이용 대상이 '국민'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여성은 안 되는 거죠. 이런 사례를 보고 이주여성 단체에서 요구해서 별도의 상담소와 센터를 만들었어요. 문제가 드러나야지만 해결할 수 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거죠. 코로나19 재난지원금에서도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은 제외되었어요. 이주여성을 세대원에 포함할 거냐 말 거냐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을 안 해본 거예요. 149p.
이주아동들은 본국에 가서도 자기 나라 말을 못한다는 것 때문에 엄청 움츠러들어요. 치명적이에요. 저는 부모님들한테 이렇게 얘기를 해요. 어지간하면 애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본국으로 가시라고. 만약에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다음은 스무살까지 버틸 각오를 하셔야 한다고. 제가 이렇게 말해도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잘 몰라요. 겪어봐야 알아요. 그게 무슨 말인지. 211p
주로 미국에서 이주민 합법화할 때 세금 실적으로, 그러니까 공과금이나 세금 낸 걸 기준으로 오래 체류한 사람들을 합법화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요. 220p
우리나라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받지 않고 있어요. 출생등록은 본국 정부에 하고, 우리 정부에는 외국인등록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죠.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 본국 정부에 출생등록을 해야 하지만 못하는 경우도 상당해요. 난민인 경우네는 본국 정부의 행정지원을 당연히 받기 어렵고요. 출신국 정부가 일부러 출생등록을 안 받아주기도 해요. 자국민 미등록자를 줄이기 위한 압박으로 출생등록 같은 행정지원에 비협조적이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요. 공식적인 통로를 안 열어주니 뒤에서 브로커를 통하죠. 미등록자가 한국에서 낳은 아기를 본국 정부에 출생등록하고 신분증을 만드는 데 수십만 원이 드는 경우도 가끔 봐요. 본국 정부에 출생등록을 했다고 해도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는 경우 아이 역시 외국인등록을 하지 못해요. 221p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한 대안이기도 하지만, 내국인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생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나, 고의적으로 출생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를 위한 대안이기도 해요. 222p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보험료가 너무 비싸거든요. 이를테면 엄마 아빠 자녀 둘로 이루어진 미등록 가정을 상상해보세요. 가령 정부에서 미등록 아동의 건강보험 가입을 허용한다고 해도, 아이들만 가입하도록 하거나 네 명에게 따로따로 기입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커요. 네 명을 한 가족으로 인정하고 주소득자가 건강보험 가입을 하고 나머지는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죠. 2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