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바탕 30회차 모임은 오랜만에 소설을 진행했습니다. 로맨스와 사랑 소설을 좋아하는 아프로디테의사과 님의 진행으로 이야기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헤르만의 우당탕 연애/결혼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소설은 그가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차별이나 삶의 고단함보다는 연애과 사랑을 중점으로 전개했습니다.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하고, 관념적이거나 철학적인 고찰도 종종 등장하는 책이더군요. 한 선생님께서는 “나도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삶의 태도가 신기하면서 재밌다”고 하시더군요. 우린 결코 인생에서 할 수 없는 것을 마음 속 한켠에 갈망하는 버릇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헤르만의 삶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결정했는데,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책임을 미루는 삶 말이죠. 매번 거짓말을 하는 삶이면서, 지켜나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터저버리는, 점층적으로 이야기가 고조화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헤르만은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여성을 만나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받습니다. 막장 스토리 같겠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 이야기에 한 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정말 재밌었다”는 감상도 남깁니다. 한강 작가의 단단하고, 시와 같은 문장을 쓰는 작가도 있겠으나,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작가의 책은 순수하게 재미가 있다는 평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재미에 김진준 번역가의 몫도 있다는 평가도 내려봅니다.
결국 세 여성의 표상은 무엇인지 토론해봅니다.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메타포일 수도 있고, (1)가족의 사랑 (2)나를 사랑하는 이 (3)내가 사랑하는 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여성를 향한 묘사에 비판점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한참 모임에서 소설이 응시하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과연 <원수들, 사라 이야기>는 여성을 긍정하는지 말이죠. 게토 지역에 대한 신성함을 비판하는 것도 같습니다. 반민족적이라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소설이 놓인 역사적 사실주의적 태도가 인상 깊습니다.
소설의 핍진성, 즉 납득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이 불우한 참사에 휘말릴 때 그의 선택지는 얼마나 될까요. 즉, 우리 모두 지난 세월을 헤매며 사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편에 내 인생에,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지 않았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온전히 자기 노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서로에게 약간은 빚을 지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소설은 랍비를 통해 헤르만에게 현실을 벗어나라고 제안합니다. 즉, 유대인에게 과거에 메여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라고, 함께 하는 조력자의 말을 듣고, 우리 유머있게 살아보자고 말이죠. 노벨문학상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