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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드즈모임 49회차-노주비-5/20(화)

개요

<동물은 어떻게 고기로 만들어지는가>, <역사학에서 ‘동물로의 전환’> 두 발제문을 읽고 토론함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폭넓게 사유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발제를 맡았던 챕터를 함께 공유하고자 함

1. 동물은 어떻게 고기로 만들어지는가

우재: '윤리적 감수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개 식용을 금지하면서 "개는 먹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보편화한 것처럼, 육류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강제적 조치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산 식료품과 공공 급식에서 육식 비율을 제한하고, 반동물권적인 공장식 축산에 제재를 가하고, 대체육 개발·생산에 공적 자금을 확대 투입하고, 동물권과 관련한 교육을 공적 영역에서 강화하는 과정이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 그나저나, 맛·식감·영양에서 육류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대체육이 나오더라도 인류는 계속 동물을 먹을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동물을 먹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하는 아티클이다.
주비: 단순히 동물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고기라 부를 것인가, 누구를 먹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왜 우리는 닭, 돼지, 소고기를 많이 먹는가. 그것을 가능케한 요인은 무엇인가. 지금 육식 산업은 누구를 착취하고 누가 그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가. 자본의 논리에 세워지고 단단해진 이 구조는 모두의 양심과 윤리에 기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탑다운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우재의 의견에 공감이 된다.

2. 역사학에서 ’동물로의 전환‘

우재: 동물을 주체로 둔 역사학은 매우 낯설고 그만큼 흥미롭다. 길고양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울의 도시사는 얼마나 다를까? 2차 대전 당시 소련 자폭 병기로 양성된 대전차 견의 관점에서 바라본 전쟁사는? 19세기 야만적인 서커스 현장에 동원된 코끼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또 인간과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집요하게 구분하고 차별해 온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역사학에서 '동물로의 전환'이 (지극히 인간적 관점이긴 하나) 모든 생명의 공생을 이끄는 자양분으로 기능하리라 기대한다. 대관절 이게 다 뭔 소용이냐 냉소할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는 이런 연구를 해야 한다.
주비: 동물을 주체•행위자로 세운다는 건 무엇일까. 아직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휘두르고 통제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자연의 일부에 불과할 뿐인데 우리는 오랫동안 그 감각을 잊고 살았다. 이러한 사유는 동물뿐 아니라 비인간 모든 것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논의도 무척 기대가 된다.

3. 전체 소감

해명
대안을 상상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틀린 것 다음 무엇을 바로 세울 것인지 명확하게 언어화되지 못 한다.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감각할 뿐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채기란 어렵다. 그저 토론하고 자료들을 검토해보고, 트렌드를 살펴보며 새로운 방향이 있는지 모색하는 것 뿐이다. 특별하게도 육식주의의 저항은 자본주의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기에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한 인간에게 무언가를 강제하긴 무척 어렵다. 예를 들어, 외로움과 고립이 늘어가는 세상에서 외국 문화가 가진 '스킨십' 문화 즉, 볼 뽀뽀와 같은 접촉을 늘린다고 한다면, 이는 반발감이 있을 것이다. 식사 문제를 사회구조적, 사회문화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나 '욕구', 특별히 식욕에 대한 지점은 쉽게 규제하기 어렵다. 집에서 게임 금지가 될 때 밖에 있는 PC방에서 밤을 세웠던 어린시절처럼. 입맛, 욕망은 사회구조적이지만, 한 번 정착화된 이후 바뀔 수 있는 것일까? 20대가 넘은 인간에게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포스터휴머니즘 시대에 동물을 주체로 둔다면, 그와의 섹슈얼리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다. 연구의 주제를 넘어서 행위의 주체, 존재의 주체를 발견하는 것,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같은 주체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다. 연구의 의지는 결국 인식의 변화로부터가 아니겠는가. 동물을 존재적 주체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연구의 주제로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주비쌤도 논문 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갈팔질팡하고, 자신의 미래와 철저히 맞닿는 주제를 할 수밖에 없듯이, 보통의 사람들도 동물을 주체로 둔 동물학을 연구한다는 건, 그만큼 동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간이 동물에 위치해있음을 인식하는 자만이 가능한 일일 테다. 그렇기에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 포스터휴머니즘 시대에서 동물사를 연구하는 것이 내포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과의 사랑을 선택한 동물성애자들 같이 낯설 섹츄얼리티를 발견하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
국인
그 어떤 주제보다도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뼈속부터 육식파라 그런가. 그래도 이번에 함께 발제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다.
주제는 동물권, 육식과 관련한 내용이었지만 토론이 치열하게 오고간 이유는 어쩌면 이 논의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근본적 고찰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뭐든 하겠다는 생각, 해도 된다는 생각이 자연과 동물을 너무나 쉽게 착취하는 결과로 이어져 온게 아닐까. 토론 중에도 나왔지만 결국 동물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는 건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우리 사회에서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조화’와 ‘절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내 삶에서 바로 채식으로 전환하는 등의 급진적인 실천을 하진 못하겠지만, 이번 논의를 통해서 그냥 외면할 것이 아닌 더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주제는 스스로 큰 저항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 주제는 특히 개인적으로 놓기 어려운 주제라서 그런지 마치 반대편에 선 사람처럼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까 때론 이런 상황을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는데, 결국 일상을 살고 있는 수많은 대중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우리에게 놓여진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큰 목표를 두면서도 한걸음씩 내딛게 하는 중간 다리들을 어떻게 둘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봐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궁극적인 목표를 강하게 가져가지 못하더라도 그 중간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역할이라도 하거나 그 방안을 더 고민해봐야한다고 느꼈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축산산업에서 동물복지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홈플러스 장보면서도 동물복지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는 걸 느꼈는데, 거기서 그치지 말고 동물복지를 지키는 축산이 당연한게 되는 정도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축산업 자체가 대체육 산업으로의 전환까지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4. 참고 자료

동물은 어떻게 고기로 만들어지는가 발제문_노주비.pdf
165.5KB
역사학에서 '동물로의 전환'_노주비.pdf
171.4KB
근대 인간-동물 관계 발제문_노주비.pdf
336.0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