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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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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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태은·진설·미정·소정·해수·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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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한울림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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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연도 :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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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 288쪽
리뷰
자조모임은 특별함과 저항감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특별한 ‘정체성’으로 모여 함께 연대하고, 공감받으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그 ‘정체성’ 외의 다채로움을 발견하고, 그 ‘정체성’만 있지 않다고 절규하는 곳.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자조모임인 <나는>의 구성원인 여섯 저자의 인터뷰집이자 구술집이다. <나는>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나는>을 어떻게 만났으며 이로 인해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소개한다. 여섯 명의 저자가 만나는 건 <나는>이라는 자조모임이지만, 공동체를 만나며 겪는 한 개인의 실존적 투쟁이 이 책의 줄기를 이룬다.
한 사람은 자기 자리가 있다. 특별히 부모에게 받는 사랑의 자리가 있다. 하지만 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인 태은, 진설, 미정, 소정, 해수, 서영의 가정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거나 왜소했다. 자기자리를 두지 못한 이들은 마치 볼록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억압된, 뒤틀린 마음을 늘상 지녔다. 이 또한 쉽게 발언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고 숨겼다. 부모와 잘못된 관계 맺는 방식으로 가족은 그들에게 상처의 공간이자, 비장애형제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전투장과 같다.
“모든 비장애형제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가족 내에 자신보다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장애형제의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어른스러운 아이’ 혹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6p)
홀로 서있다는 외로운 감각은 나와 같은 존재가 있을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을까, 라는 절박함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나는>에 모여, “비장애형제 모임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배워나가고 있었다.” (52p) 물론 함께 모인 그들의 상황이 매한가지인 건 아니다. 다른 위치와 조건 속에 놓여 있는 그들은 <나는>의 다양한 활동과 실험을 통해 ‘공동체’로 되어 간다. 자기의 서사를 써내리며, 상처와 아픔을 직면하고, 이를 공유한다. 자신의 삶에 이름을 붙이고, 느꼈던 감정을 복기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나는>의 활동결과집이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의 메시지일 터이다. 특별히 여성들의 울부짖음과 엄마와의 관계가 인상적이다. 불행한 가족의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위태로운 ‘모녀의 세계’가 내 눈 앞에 놓여진다. 불행은 스스로 주어지지 않고, 부모가 자녀에게 몫과 책임을 전가하며 그 찌꺼기로 부과된다. 찌꺼기와 같기에 이를 쉽사리 저항하기 어렵고, 발견해내지 못하는 이들은 끝끝내 불행이 자신의 온 몸에 덕지덕지 붙었을 때 이를 발견하고 소리친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고! 오롯이 나로, 나대로, 있는 그대로 살고 싶었다고!
장애 당사자, 장애 부모의 곁에 소외된 ‘비장애형제’의 존재를 깨닫는다. 당사자 커뮤니티 모임의 존재 또한 깨닫는다. 길거리에서 소리치고 외치는 것만이 투쟁의 현장이 아니다. 공간에 둘러모여 자기 목소리를 깨닫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 듣는 <나는>은 따뜻한 투쟁의 자리다. 전체 원고를 매만져준 편집자의 노고가 엿보인다. 하나의 톤으로 이야기가 전달되도록 힘쓴 노력이 보인다. 인터뷰집의 한계를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외치는 그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인상 깊은 구절 TOP4
하나의 세계에서 소외되어 '타자'가 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증명하는 것도 '장애'의 역사라고. 3p
'비장애형제'는 아동기에서 끝나는 정체성이 아닙니다. 생애주기의 모든 순간마다 장애형제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부모 사후에 장애형제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비장애형제이죠. 7-8p
'엄마, 나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부터, 내가 아닌 장애형제나 가족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성인이 된 나까지.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 안부를 묻는다는 의미로 '나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25p
그동안 비장애형제로서의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온 소진은 이날 장애형제가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니라 특징일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원래 시나이로에 있던 ‘비밀’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후 지수에게 동생의 장애를 고백할 수 있었다. 196p
인상 깊은 구절 (전체)
비장애형제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것은 어린 시절에 겪어야 했던 이 '정당한 소외'일 것이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이 언제나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소외의 경험을 장애인인 나는 느끼지 않았다. 2-3p
하나의 세계에서 소외되어 '타자'가 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증명하는 것도 '장애'의 역사라고. 3p
우리나라에서는 조현병이나 분열형 정동장애, 양극성장애, 반복성 우울장애, 이 네 가지 정신질환이 만성화된 경우를 정신장애로 분류하고 있어요. 6p
'비장애형제'는 아동기에서 끝나는 정체성이 아닙니다. 생애주기의 모든 순간마다 장애형제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부모 사후에 장애형제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비장애형제이죠. 7-8p
우리는 비장애형제의 서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p
'엄마, 나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부터, 내가 아닌 장애형제나 가족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성인이 된 나까지. 그런 자신에게 스스로 안부를 묻는다는 의미로 '나는?'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요? 25p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마다 자기 자신보다는 장애형제 이야기를 꺼내는 게 먼저였던 스무 살의 태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건 태은이 장애인의 언니로서 자신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 말고는 자신을 설명할 다른 언어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문제는 비장애형제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부가적인 이익을 얻어갈수록 그것 말고 태은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점점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45-46p
관계가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모두가 그를 한 명의 정신질환자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와 어떤 깊은 대화나 정서적인 교류가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았다. 마치 조현병 이외에 그가 한 인간으로서 지닌 다른 부분은 싸그리 포맷되어 버려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79p
하루에 담배를 스무 개비 넘게 피워대며 독한 연기를 연거푸 들이마셨던 것도 어쩌면 쉼 없이 공회전하는 수많은 환청을 쫓아내 보려는 그 나름의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91-92p
그는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집에서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진설 하나뿐이라는 것을. 105p
미정이 탄식을 한 이유는 편집을 끝내고 보니 영화에서 초원의 동생 ‘중원’의 비중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모아놓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었다. 상영시간 115분 중 중원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합쳐봐야 고작 15분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화면 구석에서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거나 ‘해님’처럼 잠시 반짝 등장하는 장면까지 모두 포함한 결과였다. 122p
그동안 비장애형제로서의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온 소진은 이날 장애형제가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니라 특징일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원래 시나이로에 있던 ‘비밀’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후 지수에게 동생의 장애를 고백할 수 있었다. 196p
서영에게 엄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이지만, 엄마가 ‘서영의 엄마’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엄마는 어떤 것이든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항상 오빠를 택했으므로. 엄마는 오빠에게만 온 신경과 정성을 쏟았으므로. 그리고 그만큼 서영에게 무관심했으므로. 236p
“너, 장애가 있는 오빠한테 자격지심을 갖고 있니?” “너까지 왜 힘들게 하니? 네 오빠 하나로 충분해.” 239p
‘스페어타이어.’ 서영은 자신을 스페어타이어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초등학생 즈음 엄마가 서영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240p
"네 오빠도 저런데, 너까지 그런 약 먹으면 내가 꼭 실패자가 된 것 같잖아." 246p
특히 장애가정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는 장애형제와 부모님뿐 아니라 비장애형제도 포함한 포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를 위한 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286p